지난 16일 코스피에 상장된 금속 탱크 제조사 엔케이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 주식 병합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주식 병합이란 몇 개의 주식을 하나로 합쳐,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이는 대신 주가를 높이는 조치다. 엔케이의 병합 비율은 10대1. 회사 주식 10개가 1개로 합쳐지고, 액면가는 500원에서 5000원이 된다. 지난 16일 엔케이의 종가 1068원을 기준으로 하면 주가도 1만원대로 확 뛴다. 엔케이는 지난 4일 주가가 875원까지 밀려나면서 한때 주가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가 됐지만 병합이 끝나면 이런 리스크가 대폭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 증시에서 동전주 기업의 주식 병합이 급증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오는 7월부터 부실 기업 퇴출을 위해 주가가 1000원을 밑도는 종목을 시장에서 내쫓겠다고 밝히면서다. 더구나 최근 유망한 종목을 골라 담는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가 유행하는 등 선별적 자금 유입이 뚜렷해지면서 상장사들 사이에서 동전주라는 이유로 선택받지 못할 수 있다는 ‘포모(FOMO·소외 공포)’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국 증시의 ‘주식 병합 러시’
최근 한국 증시의 ‘주식 병합 러시’는 코스피와 코스닥을 불문하고 나타난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6일까지 공시된 주식 병합 결정은 총 141건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주식 병합 결정 공시(17건)의 약 8.3배다. 올해 들어서는 1월 1건, 2월 22건에서 3월 118건으로 늘어나는 등 증가세도 가파르다.
특히 동전주가 몰려 있는 코스닥뿐 아니라 코스피에서도 주식 병합이 급증했다. 코스피 상장사의 주식 병합은 지난 2024년 0건, 지난 2025년 2건 등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 2월 5건, 3월 27건을 기록하는 등 주식 병합에 나선 상장사가 속속 나타났다. 코스닥에서는 지난 1월 1건, 2월 17건, 3월 91건 등 빠르게 늘고 있다.
대부분 회사는 주식 병합 공시 목적에 “유통 주식 수 감소를 통한 주가 안정화 및 기업 가치 제고”라고 적었다. 동전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식 수를 많게는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강력 조치를 취하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주식 병합 갈수록 는다
한국 증시의 주식 병합 러시는 최근 금융 당국이 발표한 ‘부실 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이 도화선이었다. 지난달 금융거래위원회는 7월 1일부터 주가가 30일 연속 1000원을 밑돌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이후 90일간 45일 연속 1000원 이상이 되지 못하면 상장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동전주들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는 평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동전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는 데다 주가 관리와 주주환원에 대한 당국의 요구도 강화하면서 상장사들의 주식병합 사례가 늘고 있다”며 “당국의 관리감독 추세가 유지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주식병합을 시도하는 기업은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변동성 확대 등 부작용도
한편, 전문가들은 주식 병합은 겉으로 주가를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의 실적이나 실제 가치를 개선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금융 당국은 주식 병합을 통한 제도 우회를 막기 위해 주가가 액면가보다 낮은 경우도 상폐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가령 액면가 500원에 주가가 400원인 기업이 주식병합을 통해 액면가가 2000원이 됐다고 해도, 주가(1600원)가 액면가보다 낮기 때문에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유통주식 수 감소에 따른 거래량 위축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면 거래량이 감소하는 데다 적은 물량을 사고파는 것만으로도 주가가 급등락하는 등 가격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상장 폐지 가능성이 줄어 긍정적일 수 있지만 본질적인 기업 가치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라며 “오히려 유동성이 줄어 주식 거래 비용이 높아지고 기업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병합 이후에도 액면가를 밑돌면 상장폐지되는 구조인 만큼 상장폐지 회피를 위한 주가 부양 기대가 단기 변동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