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서 순자산 1조원이 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F 중 순자산 ‘1조원 클럽’에 속한 상품은 지난 11일 기준 79개로 집계됐다. 2024년 34개, 지난해 66개였던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올해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투자 자금이 ETF로 대거 유입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근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개별 종목보다 지수 추종이나 특정 업종에 분산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순자산 1조원 ETF 속속 등장

한국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신한자산운용 ‘SOL AI 반도체소부장 ETF’는 지난 10일 순자산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4600억원 수준이던 순자산이 두 달 만에 2.2배로 불어난 셈이다. 앞서 1월에는 국내 반도체 핵심 종목에 투자하는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 Fn K-반도체’가 1조원 클럽에 합류하기도 했다.

전체 ETF 시장 역시 급성장하는 추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F의 순자산 총액은 지난달 말 387조6420억원(1073개 종목)에 달했다. 2024년 말까지만 해도 순자산 총액은 173조5638억원이었는데, 약 1년 2개월 만에 2.2배로 불어났다.

자본시장연구원은 ‘ETF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ETF는 저렴한 비용으로 분산 투자 효과를 누릴 수 있고 편의성과 접근성이 우수해 국내 도입 이후 연평균 33%라는 매우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며 “(한국 ETF 시장은) 규모와 상품 수 측면에서 글로벌 ETF 시장의 성장 속도를 넘어선다”고 했다.

◇코스닥으로 자금 수혈도 활발

최근에는 코스피에 집중됐던 투자 자금이 코스닥으로 확산되는 등 시장 내 자금 이동도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지난 10일엔 국내 최초로 코스닥 액티브 ETF가 등장했다. 이날 상장된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의 ‘KoAct 코스닥액티브’와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TIME코스닥액티브’는 코스닥 전체 종목을 포괄하는 ‘KRX 코스닥 지수’를 비교 지수로 삼는다. 지난 10~11일 이틀 동안 개인 투자자는 두 상품을 각각 6253억원, 3482억원어치 순매수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기존 코스닥 ETF는 대부분 코스닥150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상품이어서 투자 대상이 상위 150개 종목에 집중되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코스닥 액티브 ETF는 전 종목에 투자할 수 있고 운용사가 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기존 코스닥 150 지수에 포함되지 않았던 중소형주들 입장에서는 ETF 수급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열린 셈”이라며 “정부 정책의 수혜가 일부 대형주에 국한되지 않고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코스닥에서도 종목별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강천기 DB증권 연구원은 “코스닥 액티브 ETF가 확대되고 운용 전략도 다양해질 경우 개별 종목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며 “코스닥 시장에서 종목 장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변동성 확대에 괴리율 경고음

하지만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ETF 가격 왜곡을 뜻하는 ‘괴리율’ 초과 사례가 급증한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0일까지 공시된 ETF 괴리율 초과 건수는 421건이다. 지난달 전체 초과 공시 건수(372건)를 여섯 거래일 만에 넘어선 셈이다. 지난해 12월(195건)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괴리율은 ETF 한 주당 시장 가격과 순자산가치의 차이를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이다. 괴리율이 높을수록 ETF 가격이 실제 자산 가치보다 높게 형성됐다는 뜻이다. 국내 자산 ETF는 괴리율이 1%, 해외 자산 ETF는 2%를 초과하면 공시되는데, 최근 증시가 출렁이면서 이 기준을 넘는 사례가 급증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변동성이 커질수록 괴리율에 따른 가격 왜곡이 확대될 수 있어 추격 매수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