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장모(30)씨는 최근 가상 자산 일부를 처분해 마련한 1500만원을 코스닥 종목에 분산 투자했다. 장씨는 “눈여겨보던 종목들이 중동 사태로 폭락해, 이때다 싶어 일부 코인을 손절하고 들어갔다”며 “하루에도 40~50%씩 움직이던 코인들은 최근 지지부진한 반면 국내 증시는 위아래로 엄청난 변동성을 보이는 데다 장기 전망까지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증시로 눈을 돌리는 이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역대급 변동성을 자랑해 온 가상 자산 시장은 지난해 말 주요 코인이 폭락한 이래 저점 부근에서 횡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 증시는 올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중동 사태에 폭락하는 등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하는 모습이다. 이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을 선호하는 코인 투자자들이 가격 변동성이 큰 국장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업비트, 글로벌 3위에서 33위로
9일 오전 가상 자산 시황 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국내 최대 가상 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의 24시간 거래 대금은 약 7억4000만달러다. 바이낸스·바이비트 등 주요 글로벌 거래소들과 더불어 세계 3~4위에 들었던 순위가 33위까지 밀려났다. 국내 코인 투자자들이 시장을 외면하면서 거래가 급감한 결과다. 업비트에 이어 빗썸(64위), 코빗(74위), 코인원(121위) 등 다른 국내 코인 거래소들도 마찬가지다.
국내 코인 시장이 쪼그라든 배경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코인들의 약세가 꼽힌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10월 12만달러를 돌파해 최고점을 기록한 뒤 최근 6만6000달러 안팎에서 머물고 있다. 블록체인360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2025년 4분기 내내 하락하면서 7년 만에 처음 3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였다. 이 기간 업비트의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30억7000만달러 수준에서 19억6000만달러로 36% 이상 줄었고, 빗썸은 30%대 감소를 기록했다. 가상 자산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구조적 약세에 접어들자 국내 코인 시장이 활기를 잃은 셈이다. iM증권 양현경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대규모 청산 이후 알트코인에서 90% 이상 빠진 사례가 속출하면서, 개인 투자자 손실이 커지면서 거래 자체가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증시는 역대급 활황
반면, 국내 증시는 역대급 활황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3400선에 머물렀던 코스피는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지난달 6400선을 돌파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터지면서 코스피가 지난 4일 하루에만 12.06%라는 역대 최대 하락 폭을 보였지만, 이조차도 ‘저점 매수’의 기회로 여겨질 만큼 투자 심리가 강하다.
실제로 투자 대기 자금으로 분류되는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3일 기준 129조8000억원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이어 4일에는 132조원으로 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빚투(빚내서 투자)’도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3일 기준 32조8000억원, 4일 33조2000억원, 5일 33조7000억원으로 연일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금·부동산·코인 등에서 빠져나온 돈이 증시로 쏠려 가는 ‘머니 무브’가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엇갈리는 자산 시장 전망
한편,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주식·코인을 비롯한 자산 시장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중동 전쟁과 유가 방향성에 따라 자산 가격이 큰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9일 키움증권은 주간 코스피 예상 범위를 5150~5800포인트로 잡으면서 “국내 증시는 굵직한 대내외 이벤트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변동성 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제조업 중심의 석유 집약도가 높은 국내 증시에 대한 위험 회피 심리가 부각될 수 있다”면서도 “국내 증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 및 정책 동력을 고려하면, 전쟁으로 인한 증시 조정은 매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코인 시장에서는 현재 구간을 저점 매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과 추가 하락 여지가 있다는 경고가 맞선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 비인크립토의 발드 타히리 선임 분석가는 “기관 투자자들이 현재의 가격 조정을 저점 매수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8만8000달러 돌파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신호”라면서도 비트코인이 주요 지지선인 6만3000달러를 지켜내지 못할 경우 추가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