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시내 금은방에서 골드바가 진열되어 있다. /뉴스1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은 등 귀금속 가격이 급등 하루만에 급락했다. 통상 전쟁이 발발하면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떠나 금으로 몰리지만, 이번에는 달러 강세와 금리 전망 변화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하며 ‘안전자산 공식’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전쟁=금값 상승”이라는 기존 흐름과 다른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 급등했던 금·은, 하루 새 급락

전쟁 충격으로 치솟았던 금과 은 가격은 하루 만에 방향을 틀었다. 3일 인베스팅닷컴 등에 따르면 4월 인도분 금 선물은 전 거래일 대비 4% 이상 하락한 5000달러선에서 거래됐다.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전쟁 확산 우려로 5400달러까지 급등했으나 하루 만에 급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은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미국과 이란의 공습 발발 직후인 지난달 27일 93달러까지 치솟았던 은 가격은 3일 10% 이상 하락한 82달러 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백금과 팔라듐 등 다른 귀금속도 동반 약세를 보이는 등 국제 원자재 시장 전반에서 변동성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 달러 선호 최고치...유가 급등에 인플레이션 우려도

지정학적 긴장감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도 귀금속 등 원자재 가격이 급락한 가장 큰 이유로는 달러 강세와 미 국채 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달러 강세는 달러로 거래되는 원자재를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투자자에게 더 비싸게 만들어 글로벌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 국채 금리 또한 상승할 경우 금과 같은 비이자 자산의 기회비용을 상대적으로 높여 수요를 감소시킨다.

실제로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는 지난 3일 장중 99.7 부근까지 오르며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또한 지난 2일 상승세로 전환했다. 제이미 콕스 파이낸셜 그룹 매니징 파트너는 “미국 달러화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외환 시장의 주요 반전이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전쟁의 파장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되면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의 상대적 매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6월 연준의 금리 동결 가능성은 58.1%로, 전 장 마감 무렵의 54.1%보다 상승했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어난 공황 매도라는 해석도 있다. 에마뉘엘 카우 바클레이즈 유럽 주식 전략 책임자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는 공황 매도이며,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작용하고 있다”며 “시장은 이번 전쟁의 규모를 지나치게 안일하게 판단했다”고 했다.

◇단기 하락...전쟁 지속될수록 오를 것

시장에서는 이번 금값 급락을 두고 단기 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과 추가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밥 하버콘 RJO 선물거래소 수석 시장 전략가는 “이번 가격 하락은 단기적일 가능성이 높다“며 ”지정학적 위험이 지속될 경우 안전자산 선호가 다시 강화되면서 금과 은 가격 상승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했다. 에이드리언 애쉬 불리온볼트 리서치 책임자 또한 ”연초 이전부터 금에 장기 투자해 온 트레이더들은 주식 마진콜에 직면했을 때 주식시장의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수익을 실현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전쟁이 장기화된다면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매력은 따라올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신중론도 제기된다. 투 란 응우옌 코메르츠방크 외환상품 연구 책임자는“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유가 급등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심화가 이어졌고, 그해 금값은 연간 기준으로 약세를 보였다”며 “이번 사태 역시 유사한 경로를 밟는다면 금값 하락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