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미국 주식으로 향하던 개인 자금 흐름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6일 코스피는 전날 사상 처음으로 6000선을 넘은 데 이어 3.67% 급등한 6307에 마감했다. 삼성전자는 7.13% 폭등한 21만8000원에 마감했다. 국내 증시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서학개미(해외 증시 투자자) 자금 일부가 국내 증시로 이동할 조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美 주식 보유액 고점서 꺾여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4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1649억달러(약 235조원)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1680억달러에서 31억달러 줄었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지난해 10월 1700억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는 고점 대비 약 3% 감소한 수준이다.
상승세를 이어가는 국내 증시에는 자금과 관심이 동시에 쏠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4일 기준 투자자 예탁금은 107조9032억원으로 집계됐다. 투자자 예탁금은 코스피가 5000선을 돌파했던 지난달 27일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선 이후 증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주식 거래 활동 계좌 또한 지난달 29일 처음으로 1억개를 넘어섰고, 24일 기준 1억180만개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국내 인구가 약 5111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1인당 2개가량 주식 계좌를 보유한 셈이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같은 기간 31조9602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승장 기대감 속에 이른바 ‘빚투’를 포함한 레버리지 투자 수요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미국 상장 한국 ETF ‘3배 베팅’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자금 이동이 감지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5일 기준 국내 주식형 ETF 순자산은 162조908억원으로, 해외 주식형 ETF 순자산(102조666억원)을 50조원 이상 웃돌았다. 지난해 초만 해도 해외 주식형 ETF(53조4005억원)가 국내 주식형(42조9436억원)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이후 국내 증시가 급등세를 이어가자 고수익을 기대한 개인 자금이 국내 상품으로 빠르게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서학 개미들은 미국에 상장된 한국 ETF를 활용해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9~25일 한 주간 국내 투자자 해외 시장 순매수 상위 5위권에 한국 지수를 추종하는 ETF 2개가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4위는 Direxion Daily MSCI South Korea Bull 3X Shares(KORU)로, 4013만달러가 순매수됐다. 이 상품은 MSCI 코리아 지수의 일간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3배 레버리지 ETF다. 국내에는 코스피 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상품이 없는 만큼, 보다 높은 수익률을 노린 개인 투자자 자금이 미국 상장 상품으로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시장 복귀 계좌’ 출시 지연
최근 미국 증시 대비 국내 증시가 강세를 보이며 미국 시장 투자 열기가 다소 누그러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연초 이후 25일까지 코스피 상승률은 40%를 넘어섰으나, 나스닥은 0.36% 하락했다. S&P500 지수는 1%대 상승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 기업이 상승을 주도하는 국내 증시와 달리, 최근 미국에서는 AI(인공지능) 발달이 소프트웨어 산업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로 관련 기업들 주가가 하락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 해외 주식을 매각한 뒤 국내 주식에 장기 투자할 경우 1년간 한시적으로 양도소득세를 감면하는 방안을 내놓으며 ‘국장 유턴’을 유도한 점 등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당초 2월 시행을 예고했던 국내 시장 복귀 계좌(RIA)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RIA 도입이 불투명해지면서 해외 주식 매수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국내 증시 상황이 당분간 상승세를 이어감에 따라 서학개미의 복귀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장기적으로 비달러화 자산에 대한 선호가 유지되는 가운데 반도체 업종이 이끄는 EPS(주당순이익) 개선과 글로벌 유동성 유입에 힘입어 한국 시장의 장기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