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지난해 주식 투자로 약 5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삼성전자부터 미국 코히런트까지 대부분 세 자릿수 수익률을 올렸다. 레버리지(대출을 지렛대 삼아 투자)를 사용하긴 했지만, 팔아서 갚아버리면 그만이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주식 생각뿐이다. 텔레그램 주식 정보방은 쉴 새 없이 울리고, 밤에는 미국 증시를 지켜보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잔다. 그가 투자에 푹 빠져 있는 걸 아는 상사의 눈초리는 따갑다. 상사에게 혼난 어느 날, 야근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연봉도 얼마 안 되는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 퇴직금 받아 전업 투자자 한 번 해봐?’

최근 1년간 코스피가 120% 넘게 오르면서 전업 투자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식 게시판마다 ‘수익률 사진 인증’이 유행이고, 그 글마다 “고수네요!”라는 댓글이 달린다.

신한카드에서 일하다 20대에 비트코인 투자 등으로 35억원을 벌어 ‘파이어족(조기 은퇴족)’이 된 한정수(35) 연두컴퍼니 대표는 “직장에 쓰는 시간보다 덜 노력하면서 직장보다 돈을 더 벌고 싶어 하는 건 도둑놈 심보”라며 “최소한 수능 공부보다 더 열심히 해야 투자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전업 투자자의 길이 직장인보다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업 투자자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1> 나의 소비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전업 투자자가 되려면 ‘현금 쿠션’으로 3년 치 생활비가 필요하다. 시장 하락기에 자산을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안전판’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비 습관을 과소평가한다. ‘지방 아파트로 이사하고, 식비를 줄이면 대충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조기 은퇴 시 가장 간과하기 쉬운 변수는 ‘결혼과 출산’이라고 분석했다. 조기 은퇴를 선택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부부다. 그러나 사람 일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아이를 낳고 나면 더 좋은 학군지로 이사하고 싶고, 키우다 보면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WSJ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상보다 많은 생활비와 은퇴 자금이 필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의료보험 등 직장이 제공하던 ‘안전망’도 사라진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 또 부모님의 노후까지 예상해야 한다.

◇<2>하락장에서도 버틸 수 있나

대부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투자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상승장’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투자자의 실력은 하락장에서 드러난다.

워런 버핏 투자 전략의 밑바탕이 됐던 ‘역발상의 기술’을 쓴 험프리 닐은 “상승장을 당신의 실력으로 착각하지 마라”고 했다. 경제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도 “전업 투자자가 되려면 운과 실력을 구분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최소 한 번 이상 금융 위기나 코로나급 변동성을 겪어 봐야 한다”고 했다.

많은 공부를 통해 나만의 투자 철학을 만들고 이를 3~5년간 반복 실험했을 때 성공을 거둬야 한다. 상승·하락·횡보 3가지 국면을 경험해 본 후 내 수익이 운이 아닌 시스템적으로 우위가 있을 때 전업 투자자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명확한 전략 없이 시장 분위기에 따라 매매하다가는 실패만 맛보게 된다. 한 대표도 “사람들에게 내 투자 철학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업 투자자가 된다는 건 ‘1인 자산운용사 대표’가 되는 것이다. 세금 신고의 복잡성, 현금 흐름의 변동성 등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연속 손실, 급락장, 포모(FOMO·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상황에서도 공포와 탐욕을 다스리는 능력이 필수다. 투자 정보 플랫폼 윌로우 웰스는 “전업 투자자는 극심한 변동성에서 오는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함’과 혼자 일하는 ‘외로움’까지 견뎌야 한다”고 분석했다.

◇<3>얼마를 벌어야 퇴사해도 될까

전업 투자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공격’이 아닌 ‘방어’다. 호주 자산 거래 플랫폼 ACY 시큐리티는 “한 번의 매매에 전체 자산의 1% 이상을 걸지 마라”고 강조한다. 레버리지 역시 극도로 제한해야 한다.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레버리지는 생존 위협이 된다.

그렇다면 얼마를 모아야 직장을 그만둬도 생활할 수 있을까. 재정 설계사 빌 벤젠은 지난해 발간한 신간에서 “은퇴 후 자산을 연간 4.7%씩 30년 인출해도 생존할 수 있을 때”라고 분석했다. 은퇴 자산 인출 전략 연구로 유명한 그는 1994년 미국재무설계사협회(FPA)가 발행하는 ‘재무설계저널’에 ‘4%의 규칙’을 발표했지만, 지난해 기준을 4.7%로 높였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예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투자 뉴스 플랫폼 인베스토피디아는 “재정적 자유란 직업이 없어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재산이나 안정적인 수입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만, 중년이 되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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