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부과 조치에 제동을 걸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일단 환호했다. 판결 직후 뉴욕 증시는 약세에서 반등해 일제히 상승 마감했고, 유럽 증시도 사상 최고치 흐름을 이어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판결 직후 새 10% 보편 관세를 꺼내 들고, 하루 만에 이를 15%로 올리겠다고 밝히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오히려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국내 증시도 코스피 5800선 돌파 이후 추가 상승 기대가 나오지만, ‘관세 리스크 재점화’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유럽·가상 자산까지 동반 반등…“위법 판결”에 위험 자산 선호 살아나
20일(현지 시각) 미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권한법(IEEPA)을 근거로 밀어붙였던 상호 관세가 법적 권한을 넘어선 조치라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시장은 “관세 부담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하며 위험 자산 선호를 키웠다.
이날 장 초반만 해도 뉴욕 증시는 물가 부담에 흔들렸다. 연준이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표에서 12월 근원 PCE가 전월 대비 0.4% 올라 시장 예상(0.3%)을 웃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세 위법 판결이 나오면서 투자 심리가 급반전했다. 결국 이날 다우평균은 0.47% 상승했고, S&P500과 나스닥지수도 각각 0.69%, 0.90% 상승 마감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미 미국 다수 헌법학자가 관련 판결 가능성을 거론해온 만큼 충격은 크지 않았고, 뉴욕 증시는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이 즉각 반응했다”며 “주식시장은 판결 직후 상승 전환하며 안도 랠리를 보였고, 특히 관세 부담이 컸던 신발·가구·완구 업종이 이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유럽 증시도 같은 흐름이었다.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600은 0.8% 올라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독일(0.87%), 영국(0.56%), 프랑스(1.39%) 등 유럽 주요국 증시도 동반 강세를 보였다.
가상 자산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6만6000달러대까지 내렸던 비트코인은 관세 판결 직후 상승세를 보이며 6만8000달러대를 회복했다.
다만 향후 관세 재도입 가능성을 둘러싼 경계감은 남아 있었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1.67% 오른 트로이온스(약 31.1g)당 5080달러에 마감했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도 전날보다 소폭(0.1%포인트) 오른 4.22%를 기록했다.
◇‘육천피’ 코앞에 둔 코스피, 트럼프 관세 변수 되나
국내 증시는 강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 판결 선고 전인 지난 20일 코스피는 5700선과 5800선을 연달아 돌파한 뒤 5808.53에 마감했다. 증권가에서는 코스피 상단 전망치를 잇따라 높이며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나증권은 지난 20일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연말 코스피 상단 7900을 제시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코스피 상단을 기존 5650에서 7250으로 올렸고, NH투자증권도 지난 5일 코스피 12개월 선행 기준 목표치를 7300으로 상향 조정했다. 외국계 투자은행(IB)도 낙관론에 가세했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코스피 강세장 시나리오를 가정해 목표치를 7500으로 제시했고, 씨티그룹도 올해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5500에서 7000으로 올렸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를 압박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일단 제동이 걸리면서, 수출주 비중이 큰 한국 증시에 단기적으로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곧바로 불확실성 해소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은 변수로 남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새 법적 근거(무역법 122조)를 활용해 전 세계 수입품에 10% 임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하루 만인 21일에는 이를 15%로 인상하겠다고 다시 발표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며 “지난 4월 상호 관세 이후 시장에 깔려 있던 관세 정책 불확실성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뉴욕·유럽 증시는 물론 삼성전자 GDR과 비트코인까지 오르는 등 시장이 ‘단기 불확실성 해소’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장기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10%를 말했다가 다시 15%로 바꾸고, 무역법 122조·301조 등 다른 법적 경로와 행정명령을 통해 품목 관세를 다시 부과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 수출의 큰 축인 반도체와 자동차는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반도체는 실질 관세보다 대미 투자 압박 같은 비관세 수단, 자동차는 후속 협상과 품목 관세 재조정 여부를 함께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