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코스피가 올해 들어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는 대규모 차익 실현에 나서며 기관의 매수 흐름과 엇갈린 움직임을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9조156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는 외국인의 지난해 연간 코스피 순매도액(4조6550억원)의 약 2배다.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도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3조7970억원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매도세는 올해 코스피가 38% 급등하며 고공행진한 흐름과 맞물린다. 지수 상승 폭이 커지자 외국인이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매도 물량은 반도체주에 특히 집중됐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삼성전자를 9조5540억원 순매도해 가장 많이 팔았다.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59% 뛰었고, 지난 19일에는 사상 처음 ‘19만전자’를 달성했지만 외국인은 이를 차익 실현 기회로 삼는 모습이었다. SK하이닉스도 5조9720억원 순매도되며 매도 상위에 올랐다.

반도체 외에도 외국인 매도는 일부 대형주에 쏠렸다. 외국인은 로봇주로 각광받으며 연초 주가가 급등세를 보인 현대차를 5조2940억원 순매도했다. 이어 SK스퀘어(6370억원), 현대모비스(6090억원), 현대글로비스(5420억원) 등도 순매도 규모가 컸다.

다만 시장에선 외국인 매도를 추세적 하락에 대한 ‘베팅’으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매도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코스피 추세적 하락에 대한 ‘베팅’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매도 대부분이 반도체주로 집중된 점을 볼 때 많이 오른 종목 비중을 줄이는 단기적인 리밸런싱(재조정) 과정으로 본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급등 이후에도 추가 상승 기대가 이어진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은 반도체 기업 이익 급증을 근거로 올해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5650에서 7250으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과열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은 2배에 접근 중인데,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 2007∼2008년 이후 처음”이라며 “저평가가 해소됐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상승에 한계가 드러날 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제는 점차 기업들의 수익성과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을 동시에 고려할 시점”이라며 “반도체·조선은 수익성은 높지만, 자산 가치 기준 밸류에이션은 크게 싸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AI) 투자 환경도 변수로 꼽힌다. DB금융투자는 AI 시설 투자 가속화가 소비 감소와 물가 상승을 이끌 수 있다며 올해 상반기 코스피 하단 전망치를 기존 4500포인트에서 4300포인트로 낮췄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하이퍼스케일러(AI 설비 운용사)들의 AI 시설 투자가 가속화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고용이 줄며 소비가 감소하면서 미국 크레딧 스프레드(국채와 신용채권 금리차)가 상승할 수 있다”고 짚었다. 또 “AI 시설 투자는 구리 및 반도체 가격을 급등시키며 소위 ‘AI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어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 마찰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이는 반도체 업종 주가의 추가 상승 이후 변동성을 확대시킬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