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그래픽./로이터 연합뉴스

설 연휴 기간 글로벌 증시는 반등 흐름을 이어갔지만, 시장의 무게중심은 ‘AI(인공지능)가 모든 주식을 끌어올리던 장’에서 업종·기업별 승자 가리기(차별화 장세)로 옮겨갔다는 진단이 나왔다. AI 에이전트(비서) 기술 발전이 기업용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이른바 ‘AI의 역설’ 공포가 커지면서, 뉴욕증시 소프트웨어 종목들이 일제히 밸류에이션 압박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반면 하드웨어·반도체는 AI 인프라 수요가 뒷받침되며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 AI ‘옥석 가리기’…소프트웨어 기업 전반 하락세

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은 19일 보고서에서 “AI의 역설 공포가 커지며 소프트웨어 업종이 흔들리고 있다”고 짚었다. AI 에이전트가 고도화되면 기존 SaaS(기업용 소프트웨어 서비스) 모델 일부가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실적이 선방한 기업도 주가와 밸류에이션이 동시에 눌리는 흐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증시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연초 이후(2월 18일 기준)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했다.먼데이닷컴(-47.8%)은 AI 자동화 도구가 프로젝트 관리 툴을 일부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다, 중소기업 고객 이탈 가능성이 부각되며 실적 전망치를 낮춘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인튜이트(-41.2%)는 AI 기반 세무·회계 자동화가 보편화되면서 ‘터보택스’ 같은 기존 세무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시각이 확산됐다. 앱러빈(-40.0%)은 AI 기반 광고 소프트웨어 경쟁이 격화되며 수익 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를 압박했다. 워크데이(-33.6%)는 AI 에이전트가 인사·재무 관리 루틴을 직접 처리하게 되면 고가 구독형 SaaS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대형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일즈포스(-29.1%)는 AI 에이전트가 고객 관계 관리(CRM)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기존 라이선스 매출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어도비(-24.8%)는 ‘클로드 코워크’ 등 생성형 AI 도구가 전문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며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 서비스나우(-29.6%) 역시 기업용 워크플로우를 담당해온 역할을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에이전트가 더 저렴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기술적 회의론이 번지며 주가가 부진했다.

◇ 반도체·IT 하드웨어는 ‘AI 인프라’로 방어…소프트웨어 기업 반전 있을까

소프트웨어 업종이 약세를 이어가는 동안, 설 연휴 반등을 실제로 주도한 쪽은 반도체·IT 하드웨어였다는 평가다. AI 투자 사이클이 ‘응용 소프트웨어의 확장’보다 ‘컴퓨팅·메모리 같은 인프라 증설’에서 먼저 확인되면서, 반등 국면에서도 자금이 인프라로 쏠렸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연휴 중 실적을 발표한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가 AI 컴퓨팅·HBM 수요를 근거로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과 강한 가이던스를 제시하며 기술주 반등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아직 초기 단계이고, HBM 증설 사이클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겹치면서 미국 기술주가 혼조를 보여도 반도체 모멘텀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다만 일각에선 소프트웨어가 AI로 ‘대체’되기만 한다는 시각이 과장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월가에서는 최근 앤트로픽의 소프트웨어 생성 도구 고도화 소식 이후 소프트웨어 종목이 흔들렸지만, 사용자 경험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가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며 투자심리를 되돌리는 모습이 관측됐다. 피그마는 18일 장 마감 직후 지난 분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0%가량 늘어난 3억38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날 정규장에서 4.7% 상승한 피그마는 시간 외 거래에서 15%가량 폭등했다. 피그마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딜런 필드는 “소프트웨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AI 특수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경쟁이 AI 출현으로 더욱 치열해지겠지만, 전체 수요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