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66)씨는 결혼을 앞둔 자녀가 생애 첫 아파트를 마련하겠다며 자금 지원을 부탁해와 고민에 빠졌다. 김씨는 자녀에게 현금 4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줄지 고민하고 있다. 김씨 부부는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기 위해 각각 2억원씩을 빌려주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자녀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고,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에는 부모로부터의 차입금으로 기재할 예정이다. 그러면서도 혹시 이 돈이 세법상 증여로 판단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김씨는 “증여를 하면 세금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돈을 건네기도 불안하다”고 했다.

가족 간 거래는 얼마까지 괜찮을까. “증여하면 세금이 많다더라”, “빌려주면 괜찮다던데 정말이냐”는 질문을 상담 현장에서 수도 없이 듣는다.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은퇴를 앞둔 부모가 자녀의 주거 자금을 도와주는 사례는 흔해졌다. 그러나 가족 간 거래라는 이유로 절차를 소홀히 했다가 국세청의 자금 출처 조사 과정에서 증여로 판단돼 수천만 원의 세금을 부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부모들은 자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자신의 노후 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더욱 복잡한 고민을 안게 된다.

국세청은 부모와 자녀 간 거래라 하더라도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한다. 서류상으로는 ‘빌려준 돈’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증여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가족 간 거래도 정상적인 금전소비대차, 즉 대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자금 출처 검증이 강화되면서 은퇴자들 사이에서 가족 간 자금 거래에 대한 불안이 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요건만 제대로 갖춘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총 4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편법이나 탈세가 아니라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예정하고 있는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설계할 수 있는 거래다. 다만 그 전제는 분명하다. ‘빌려준 것처럼 보이는 증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대여여야 한다.

그래픽=이철원

◇이자 이익 1000만원 넘지 않아야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1조의4는 타인에게 금전을 무상 또는 세법상 적정 이자율(연 4.6%)보다 낮은 이율로 빌려준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때 적정 이자율과 실제 이자율의 차이로 발생하는 ‘이자 이익’이 연간 1000만원 이상이면 그 이익을 증여로 간주해 대출받은 자의 증여 재산으로 본다. 대출 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에는 매년 새로 대출받은 것으로 보아 증여재산가액을 계산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사람에게 증여세 부담 없이 무이자로 빌려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약 2억1700만원 수준이다. 적정 이자율 4.6%를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이자 상당액이 연간 1000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 한 명이 자녀에게 2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줄 경우 증여 이익은 약 920만원으로 1000만원에 미치지 않아 세법상 증여로 보지 않는다.

같은 구조를 부모 두 사람에게 적용하면 총액은 더 커질 수 있다. 부부가 각각 자녀에게 2억원씩, 총 4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더라도 각 거래는 별개의 대여로 판단된다. 각각의 증여 이익이 1000만원 미만이기 때문에 세법상으로는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 구조다.

정리하면 가족 간 무이자 대여라고 해서 모두 증여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얼마를 빌려줬느냐’보다 ‘어떤 구조와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느냐’다. 특히 부모 각각이 자녀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경우에는 거래 단위가 분리돼 판단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상환 계획과 능력도 중요

다만 금액 요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과세 당국은 숫자뿐 아니라 거래의 전 과정을 함께 본다. 가족 간 무이자 대여가 ‘대여’로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요건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먼저 차용증, 즉 금전소비대차 계약서 작성은 필수다. 부모가 각각 자금을 빌려주는 구조라면 계약서 역시 각각 별도로 작성해야 한다. 대여 금액과 대여 일자, 변제 기한, 무이자 조건 등을 명확히 기재해 누구나 보아도 금전 대여임이 드러나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증을 받아 두는 것도 방법이다. 과세 당국의 자금 출처 조사 시점에 급히 만들어진 소급 계약서라는 의심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자금 흐름의 투명성도 중요하다. 계약서 내용에 따라 부모 명의 계좌에서 자녀 명의 계좌로 직접 이체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금으로 건네거나 다른 가족의 계좌를 거쳐 우회 송금하는 방식은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변제, 즉 상환 계획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무이자라는 점과 상환 의무는 별개의 문제다. 대여 기간이 장기라면 만기 일시 상환보다는 분할 상환이 인정받기에 유리하다. 계약서에 구체적인 상환 일정이 포함돼야 하며 실제로 일부라도 상환이 이뤄졌다면 그 자체로 강력한 입증 자료가 된다. 반대로 30~40년 분할 상환처럼 제3자 간 거래에서는 보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조건은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자녀의 상환 능력도 중요하다. 분할 상환을 전제로 한다면 자녀에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소득이 있어야 한다. 직업과 소득, 재산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차입은 거래의 실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자금 출처 역시 설명 가능해야 한다. 부모 각각이 해당 금액을 빌려줄 재산적 능력이 있었는지, 소득과 자산 형성 과정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지도 함께 검토된다. 명의상 소득이나 재산이 전혀 없는 경우라면 세무상 쟁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