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어디로 흐르며, 시장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가. 경제 유튜버 한정수가 세상을 경제적 관점에서 읽고 분석합니다. 조선멤버십 회원이 되어 다양한 콘텐츠와 풍부한 혜택을 누리세요
투자는 예측 시장과 같다. 투자자들이 각자 예측한 미래에 돈을 걸고, 결과에 따라 부를 쌓거나 잃는다. 기업 분석과 실적 발표 등도 중요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가늠하는 싸움이다.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웹툰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는 주인공 진도준은 미래의 기억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에 투자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진도준처럼 실제 경험한 미래의 기억이 없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가 무엇일지 상상해보는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실현될 확률이 높은 미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다. 그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를 실제로 만들어나갈 힘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미래의 길목에 있는 장애물은 아무리 치우기 어려워 보여도 어떻게든 치워질 확률이 높고, 그 미래에 도움이 되는 분야는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어떻게든 성장할 확률이 높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정치 권력, 빅테크(Big Tech)로 불리는 기술 권력이 원하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공부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는 모두 AI 시대를 가리킨다. 미국에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이자 안보 문제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목표로 하는 미국에 과잉 투자는 기본값이다. 빅테크에 AI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지금의 AI 경쟁이 훗날 과잉 투자로 밝혀지더라도, 잃는 것은 돈뿐이다. 하지만 AI가 버블이 아니라면, 소심한 투자로 인한 격차는 따라잡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무리 AI 버블론이 제기되더라도 투자를 멈추기 어려운 이유다.
미래를 수익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미래에 생길 ‘병목’과 미래에 해소될 ‘오해’를 찾는 것이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부족해 ‘병목(bottleneck)’ 현상이 생기는 곳에 투자하거나, 성장을 가로막는 병목이 해소되어 급격히 성장하는 곳에 투자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기존 통념상 오해를 받던 부문이 재평가되는 과정에서도 좋은 수익이 나온다. 이미 현실은 바뀌었는데 인식이 따라오지 못한 지점이다.
그동안 AI의 ‘병목’은 GPU였다. GPU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속도를 좌우했다. AI 레이스를 펼치는 빅테크 기업들은 빨리 모델을 키우고 싶어도 GPU가 없어서 확장하지 못했고, 엔비디아는 GPU 칩이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AI 파도의 병목을 차지한 엔비디아는 2022년 12월 챗GPT가 출시된 이후 10배 넘게 성장하며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2025년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아직 GPU가 병목이라는 ‘오해’를 갖고 있었지만, AI 경쟁에서 가장 큰 병목은 GPU가 아니라 GPU를 돌릴 전력망(power)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컴퓨터 연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데이터센터를 지어야 하는데, 물리적인 전력망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칩을 구동할 전력을 확보하지 못해 어렵게 구한 GPU를 쌓아두는 현상도 생겼다. 이에 따라 미리 싼값에 전력을 확보해둔 비트코인 채굴 업체들과 원자력 등 에너지 회사들이 재평가되고 있다.
성장을 가로막는 병목이 해소되어 빠르게 성장하는 곳은 피지컬 AI 시장과 로봇 시장이다. AI의 발달이 로봇 기술 성장 속도에 혁신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원래 로봇의 모든 행동은 개발자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프로그래밍해줘야 했다. 학습 누적이 안 되기 때문에 사과를 집을 수 있다고 해서 손수건도 집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프로그래밍 속도가 곧 로봇 발전 속도의 병목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로봇들은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통해 몇십 번만 학습하면 훈련하지 않은 작업을 응용해 수행할 정도로 똑똑해진다. 10년 동안 직접 인간이 프로그래밍해 얻은 성과보다 지난 1 년간 AI 가 이룬 성과가 더 많을 정도다. 손으로 프로그래밍해야 하는 부분도 직접 할 필요가 없어졌다. AI 에게 원하는 프로그램을 말로 전달하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표준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핫한 프로그래밍 언어는 영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도 AI 에 의한 정복이 거의 끝났다.
앞으로 미래를 좌우할 메가트렌드는 이미 정해졌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는 이런 AI 의 파도를 수익화할 방법이 많지 않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는 AI 원천기술이나 해자(垓字·moat)를 보유한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꼽자면 AI 칩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뿐이다. 작년 코스피 지수는 미국 S&P 500보다도 높은 76%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상승분의 48.8%를 차지한다. 현재 두 기업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에 개인 투자자가 직접 접근할 수 있는 AI 투자는 현재로서는 미국 주식 시장이 거의 유일하다.
투자자 관점에서 그동안 정부가 하지 말라고 했던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투자로 밝혀진 경우가 많았다. 2017년 있었던 부동산 투기과열지구 지정 및 2020년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시장에 어디가 ‘정부 공식 인증 부동산 투자 유망지’인지 알려주는 꼴이 됐다. 2018년 초 정부가 거래 금지를 시사했던 비트코인은 잠시 하락했다가 10배 넘게 상승하며 현재까지도 최고의 누적 수익률을 가진 투자 자산으로 남아 있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게 바로 ‘좋은 투자’라는 시그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정부가 요즘 ‘미국 주식 투자하지 말라’는 말을 꺼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한정수 연두컴퍼니 대표
증권시장, 가상자산, 대체투자 등을 아우르며 투자하는 개인투자자. 20만 명 구독자 유튜브 채널 ‘세상학개론’을 운영하고 있다. ‘파이어드: 부의 해방일지’, ‘나는 투자로 30년을 벌었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