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재계 대표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아랫줄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연합뉴스

지난 1년 증시 랠리의 과실은 ‘10대 기업집단’에 고르게 돌아가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총액 기준으로 매긴 2025년 기업집단 순위(농협 제외) 상위 10곳(삼성·SK·현대자동차·LG·롯데·포스코·한화·HD현대·GS·신세계)만 놓고 봐도, 반도체·방산·조선·전력기기 같은 글로벌 테마를 탄 그룹은 상장사 시가총액이 2~3배로 불어난 반면 배터리(이차전지) 수요 정체와 내수 부진에 노출된 그룹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코스피는 지난 9일 4586.32로 1년 전인 2025년 1월 9일(2521.90) 대비 약 82% 급등했고, 코스닥도 같은 기간 31% 올랐다. 상장사 시가총액(코스피+코스닥) 역시 1년 새 2426조9561억원에서 4307조6649억원으로 1880조7088억원(77.5%) 불었다. 하지만 10대 그룹 안에서는 성적표가 갈렸다. 삼성·SK·한화·HD현대는 상장사 시가총액이 두 배 안팎으로 불어난 반면, LG·롯데는 시장 평균을 한참 밑도는 상승률에 머물렀다.

◇“AI·방산·조선이 다 했다”…SK·한화·삼성, 시총 ‘퀀텀 점프’

상승장의 최대 수혜자는 SK와 한화였다. SK그룹 상장사 합산 시가총액은 1년 새 190.6% 급증해 10대 그룹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 국면에서 HBM(고대역폭 메모리) 기대가 집중되며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149조원대에서 514조원대로 263%가량 급등했고, SK하이닉스 지분 가치에 연동되는 SK스퀘어도 349.9% 뛰며 그룹 전체 시총을 끌어올렸다. SK그룹 전체로는 1년 새 시총이 약 445조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한화그룹은 방산과 조선이 ‘쌍끌이’했다. 그룹 시총 증가율은 188.3%였다. ‘K-방산’ 대표주로 꼽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50.3% 폭등했고, 조선업 업황 기대를 반영한 한화오션도 200.3% 올랐다. 방산 전자·C4I(지휘통제) 쪽을 맡는 한화시스템 역시 213.9% 상승했다. 그룹 시총 증가는 절대 규모로도 약 92조원에 달했다.

재계 1위 삼성그룹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 기대에 올라타며 단일 그룹 최초로 ‘1000조 클럽’을 열었다. 그룹 시총은 110.7% 늘었고, 삼성전자 시총이 334조원대에서 822조원대로 145.7% 뛰며 증가분 상당 부분을 책임졌다. 삼성물산도 112.9% 상승하며 지주사 격 종목의 리레이팅을 뒷받침했다. 조선 사이클과 맞물린 삼성중공업(138.2%)도 큰 폭으로 올라 그룹 시총 확대에 기여했다.

조선·전력기기 강세는 HD현대에도 강하게 반영됐다. 그룹 시총은 109.3% 증가했다. HD현대중공업이 138.8% 올랐고, 전력설비 투자 확대 기대 속에 HD현대일렉트릭이 104.8% 뛰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시총이 약 71% 늘어 시장 평균(77.5%)에 근접했지만, SK·삼성·한화·HD현대처럼 ‘두 배’ 성장 대열에는 다소 못 미쳤다. 다만 현대차(68%)·기아(26.6%) 외에 현대로템(304.8%), 현대오토에버(253.2%) 등이 강세를 보이면서 그룹 시총 확대에 힘을 보탰다.

◇LG·롯데·포스코 등은 ‘시장 평균’도 벅찼다

반대편에는 시장 급등에도 시총이 별로 늘지 않았던 그룹들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곳은 LG다. LG그룹 시총은 1년 새 7.8% 늘어나는 데 그쳐 10대 그룹 중 최근 1년간 시총 상승률이 최하위였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핵심 계열사 LG에너지솔루션 시총이 1년 새 1.3% 늘어나는 데 머물렀고, LG전자도 3.4% 상승에 그쳤다. LG화학이 25.5% 오르긴 했지만, 그룹 전체 성적표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롯데그룹도 내수 민감 업종 비율이 큰 구조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룹 시총은 14.0% 증가에 그쳤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 탓에 롯데케미칼 시총 증가율이 11.5%에 머물렀고, 롯데지주도 14.5% 상승에 그치며 시장 평균과 격차를 보였다. GS그룹(18.7%) 역시 지주사 GS가 44.4% 오르며 선방했지만, 바이오 계열사 휴젤이 -10.3% 역성장하는 등 계열사별 등락이 엇갈렸다.

포스코그룹(19.4%)도 시장 수익률을 하회했다. POSCO홀딩스가 14.1% 오르는 데 그치면서 그룹 시총 증가 폭이 제한됐다. 신세계그룹은 41.3% 증가로 LG·롯데보다는 나았지만, 시장 평균(77.5%)에는 미치지 못했다. 신세계가 91.2% 급등하며 백화점 실적 기대를 반영했으나, 이마트는 26.5% 상승에 그쳤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1.7%로 뒷걸음쳤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올해는 개인 투자자들만 ‘반도체를 샀느냐’에 따라 성적표가 갈린 게 아니다”라며 “10대 그룹도 마찬가지로 반도체·방산·조선·전력기기처럼 최근 증시를 주도한 업종의 핵심 계열사를 보유했는지 여부에 따라 코스피 랠리의 수혜가 극명하게 갈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