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뚝 떨어뜨리자, 이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아 미국 주가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31일 코스콤 ETF체크가 집계한 최근 일주일(24~30일) 국내 상장 ETF(상장지수펀드) 자금 순유입 규모를 보면 1위가 TIGER 반도체TOP10(3617억원), 2위가 TIGER 미국S&P500(2839억원), 3위가 KODEX 200(2094억원) 순이었다.

2위에 오른 TIGER 미국S&P500은 이 기간 수익률이 2.1% 하락했는데도 투자자들이 몰린 게 특징이다. 국내 대표 지수인 코스피 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ETF(3위 KODEX 200)보다도 돈이 더 몰린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래픽=백형선

최근 5거래일간 미국 S&P500 지수는 소폭 상승했지만, 원화 대비 달러 가치가 이 기간 2.7%가량 급락하면서 원화 기준 환차손이 발생했다. ETF 평가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이를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베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 상장된 미국 주가지수형 ETF 순매수도 이어지고 있다. 예탁결제원 세이브로의 같은 기간 통계를 보면 순매수 상위 종목 10위 안에 지수형 ETF 3개가 포진했다. 뱅가드 S&P500(2위·8076만달러), 인베스코 나스닥100(6위·3968만달러), SPDR Portfolio S&P500(8위·2772만달러) 등이다.

환율이 단기 급락했음에도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려는 개미들이 주춤하지 않는 것은 2026년에도 환율이 크게 하락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2026년 1분기 달러 대비 원화 환율 전망치 중간값은 1430원으로 2025년 평균(1422원)보다도 높다. 2026년 4분기 평균값도 1400원으로 원화 강세는 뚜렷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달러의 구조적 약세와 경상수지 대규모 흑자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자와 대미 투자 등 자본 유출 부담이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 연간 평균 환율은 외환위기가 왔던 1998년(1398.9원)보다도 높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역대 최저로 떨어졌지만,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서 해외 주식에 투자한 규모는 사상 최대인 311억달러(약 45조원·순매수 기준)를 기록했다.

2026년 초 환율은 일단 2025년 말보다는 아래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가 서학개미(해외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에 양도소득세 일시 면제 카드까지 써가며 달러를 들여오려는 외환 수급 대책을 내놓은 데다, 국민연금도 전략적 환헤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가 2026년에 최소 한 차례 이상 금리를 인하할 경우,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달러인덱스)는 더욱 하향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환율 수준에 상관없이 내국인들의 해외 투자 열기는 식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액 자산가들, 특히 ‘영리치’일수록 달러 자산을 투자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보유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을 가진 부자들의 투자 행태를 설문한 결과, ‘외화 자산을 보유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경우가 2024년 65%에서 2025년 82%로 크게 늘었다. 특히 40대 이하 영리치들은 이미 전체 주식 자산 중 해외 주식 비율이 3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