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의 ABC 리파이너리 제련소에서 금괴가 주형(틀)에서 막 꺼내진 모습./AFP 연합

금·은·구리 등 원자재 시장을 달구던 ‘랠리’가 29일(현지 시각) 급제동이 걸렸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은 전날 대비 4.6% 급락한 트로이온스당 4343.6달러에 마감했고, 은 가격도 8.7% 급락했다. 구리 선물도 4% 넘게 내리는 등 동반 약세를 보였다. 올해 들어 전날까지 금 가격은 72.4%, 은은 164%, 구리는 45% 급등하며 기록적인 랠리를 펼쳐왔지만, 이날은 급등 피로가 한꺼번에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의 1차 배경으로 ‘차익 실현’ 매물을 꼽았다. 하이리지 퓨처스의 데이비드 메거 금속 트레이딩 디렉터는 로이터에 “모든 금속이 최근 및 사상 최고치로 올라갔다”며 “그처럼 놀랄 만큼 높은 수준에서 차익 실현성 되돌림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은 시장에 대해 “(은의) 공급 제약이라는 근본 요인이 여전히 시장에 남아 있고, 2026년을 향해 전망도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거래소의 증거금(마진) 상향 조정이 매도를 부추겼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은 선물 거래에 필요한 증거금을 올리면서, 빚을 내거나 적은 돈으로 큰 규모의 은에 베팅하던 투자자들은 추가로 현금을 더 넣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돈을 더 보태기 어렵다면 보유하던 계약(포지션)을 줄이거나 정리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매물이 한꺼번에 나오며 가격이 더 크게 흔들렸다는 해석이다.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루샤브 아민 멀티에셋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높아진 증거금 요건, 부족한 유동성 및 기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은뿐만 아니라 다른 귀금속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연말·연휴로 거래가 한산해진 가운데 유동성 제약이 하락 폭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TD증권의 다니엘 갈리 상품전략가는 이번 조정이 “유동성 제약으로 인해 더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 조사에 대한 권고안을 내놓아야 하는 시한과 연관된 유동성 제약이 컸고, 여기에 연휴로 거래가 얇아진 점까지 겹치면서 가격 하락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즉 연말 특유의 ‘얇은 장’에서 대형 포지션이 한쪽으로 쏠린 상태였는데, 정책 관련 시한을 앞두고 위험 노출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맞물리며 매물이 한꺼번에 나오자 가격이 더 크게 흔들렸다는 해석이다.

지정학적 긴장 완화 기대가 안전 자산 선호를 다소 누그러뜨렸다는 시각도 있다. 액티브트레이즈의 리카르도 에반젤리스타 애널리스트는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 진전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조심스러운 낙관도 약한 역풍”이라고 했다.

시장은 다음 날 공개되는 연준 12월 회의 의사록을 앞두고 금리 경로 단서를 확인하려는 분위기다. 이미 금 가격이 크게 오른 만큼, 금리 전망이 예상과 달라질 경우 조정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UBS는 “금 가격이 높은 프리미엄에서 거래되고 있어, 연준이 매파적으로 전환해 시장을 놀라게 하거나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서 대규모 자금 유출이 발생할 경우 하방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