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지수가 올해 75.6% 상승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올해 세계 주요 30국 증시 중 압도적 1위다.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低) 호황’이 정점이던 1987년(93%), 닷컴 버블의 한가운데였던 1999년(83%) 이후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지난 4월 초 미국의 관세 전쟁 위협에 2284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는 ‘코스피 5000’을 공약으로 내건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3000선을 회복했고, 주주 환원 기대감 속에 10월 말 사상 처음 4000선까지 뚫었다. 30일 연말 종가는 전날보다 0.15% 내린 4214.17을 기록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코스피 4000 이끌어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증시가 전인미답 고지에 오른 것은 무엇보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꽃을 피운 덕분이라고 본다. 세계적 AI(인공지능) 투자 열기 속에 그간 기술을 갈고닦은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최대 수혜로 지목되며 증시를 이끈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투자자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았다. 외국인은 올해 삼성전자를 10조원 가까이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하며 주가를 장중 사상 최고치인 12만1200원까지 올렸다. 삼성전자는 그간 부진했던 HBM(고대역폭 메모리)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았다.
SK하이닉스의 비약은 더 눈부셨다. 엔비디아에 최첨단 HBM을 선제적으로 납품하는 등 글로벌 HBM 시장에서 1위를 달린 덕분에 주가가 뛰었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올해 125%, 2위 SK하이닉스는 280% 뛰면서 전체 주가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AI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전력 수요 부족이 심각해질 걸로 전망되면서, 효성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 등 전력기기 제조 업체들 주가는 300% 넘게 뛰기도 했다.
원익홀딩스(1809.8%)·씨어스테크놀로지(1137.9%)·로보티즈(1052.8%) 등 ‘텐베거(주가가 10배 이상 상승한 종목)’도 대거 등장했다. 삼양식품·효성중공업·한화에어로스페이스·두산 등 1주당 100만원이 넘는 황제주도 속속 탄생했다.
◇그럼에도 개미들은 美로 떠나
코스피 상승률이 미국 나스닥, S&P500 상승률을 3배 이상 앞질렀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한국 시장을 등진 것도 이례적이다. 개미들은 올해 코스피 시장에서만 26조5000억원이라는 유례없는 순매도를 기록했다.
반면 올해 내국인들의 해외주식 순매수는 312억2658만달러(약 44조8200억원)로 사상 최대였다. 각종 기업 옥죄기 입법 속에 주가 상승이 단기에 그칠 수 있다는 비관론, 가파른 원화 약세, 해외 빅테크들의 약진 등이 투자자들을 해외로 등 떠민 것으로 분석된다.
코스피 4000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며 반성문 형식의 보고서를 낸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를 되돌아보면 주가가 예상보다 많이 올랐다는 사실보다는 ‘원화 약세’와 ‘코스피 상승’이라는 조합이 당혹스러웠다”며 “역사적으로 코스피가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국면에서 원화가 약세를 나타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2년 연속 급등 가능성은?
지난 40여 년간 코스피 움직임을 보면 2년 이상 연속 연간 상승률이 ‘플러스(+)’를 기록한 적은 8차례로 적지 않았다. 연간 코스피 상승률이 50% 이상을 기록한 이듬해에 전년 상승률을 넘어선 적도 두 차례(1986년, 1998년) 있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간 단위로 연속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게 만드는 근본 동인은 ‘이익 모멘텀’”이라며 “내년 코스피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11월 말 412조원에서 현재 426조원으로 높아지고 있어 내년 증시를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