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국내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매수 흐름이 뚜렷하게 약해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 후반대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정부가 해외 투자 관리 강도를 높이며 환율이 1440원대로 내려온 데다, 연말 세제 요인까지 겹치며 과열됐던 해외 투자 심리가 다소 진정되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4거래일 연속으로 미국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며, 연말을 앞두고 수급 흐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달 순매수 규모, 전달의 3분의1…매수 강도 급감
2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25일까지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금액은 20억6722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순매수 규모(59억3442만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난 10월 순매수액(68억5499만달러)과 비교하면 감소 폭은 더욱 크다. 최근 석 달간 월별 순매수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이달 들어 미국 주식으로 유입된 자금 규모가 뚜렷하게 줄어든 셈이다.
일간 흐름을 살펴보면 매수세 둔화는 더욱 분명하다. 이달 들어 미국 증시 결제가 발생한 19거래일 가운데 7거래일이 순매도를 기록했다. 특히 이달 중순 이후 매도세가 집중되며 22일 2879만달러, 23일 1억4009만달러, 24일 2796만달러, 25일 8456만달러 등 4거래일 연속으로 순매도가 이어졌다. 이는 지난 10월과 11월 각각 순매도 일수가 4일, 2일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매도 빈도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최근 서학개미 매수세가 주춤한 배경으로는 환율과 정책 요인이 동시에 거론된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이달 초 1470원선을 돌파한 뒤 한때 1480원대 후반까지 오르며 해외 주식 투자에 따른 환차손 부담을 키웠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해외 자산 비율이 높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투자 시점과 규모를 조절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국 대응·연말 세제 요인 겹쳐
여기에 외환·금융 당국이 해외 주식 투자가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긴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대응에 나선 점도 매수세 둔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초 해외 상품 취급 규모가 큰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해외 투자 영업 관행 전반을 점검했다. 해외 주식 투자 과정에서의 마케팅 방식과 고객 안내 절차, 투자 위험 고지 여부 등이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증권사들은 해외 주식 관련 이벤트를 잇달아 중단했다. 미래에셋증권은 금융시장 여건과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해외 투자 관련 이벤트를 일시 중단했고, 삼성증권과 키움증권은 해외 주식 거래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한 투자 지원금 제공을 멈췄다. 토스증권과 유진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도 해외 주식 관련 현금성 이벤트를 중단했으며, 일부 증권사는 미국 주식 무료 수수료 행사나 해외 주식 관련 홍보 채널 운영도 잠정 중단했다. 해외 주식 거래를 둘러싼 판촉 환경도 이전보다 위축된 모습이다.
증권가에서는 연말을 앞두고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고려한 매도 수요가 늘어난 점도 최근 순매도 흐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주식 투자 수익에 대해서는 연간 250만원까지 기본공제가 적용되는 만큼, 투자자들이 연말을 앞두고 이익과 손실을 합산해 공제 한도를 맞추기 위한 손익 통산 목적의 매도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만 서학개미의 추세적 복귀 여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외 주식 투자 흐름이 환율 방향과 밀접하게 연동돼 있는 만큼, 환율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들은 근본적인 추세를 바꾸기보다는 높아진 변동성을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수급 요인에 대한 편향된 심리가 진정될 경우 환율과 펀더멘탈 간 괴리는 축소될 가능성이 있지만, 환율 수준에 대한 눈높이는 여전히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