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5000만원까지 한도라고요? 땡큐! 딱 한도 만큼만 차익실현할게요!”(회사원 한모씨)

“국장(국내 주식시장) 살리기, 환율 구하기에 진심인 대통령 덕 좀 보네요. 안 팔고 여태 버틴 보람 있습니다.”(자영업자 박모씨)

미국 주식 팔고 국내 주식으로 갈아타는 투자자들, 이른바 ‘전향 개미’, ‘귀순 개미’들에게 한시적으로나마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준다는 정부 발표에 연말 국내 주식투자자들이 들썩이고 있다.

정부는 개인투자자가 올해 이달 23일까지 보유하고 있는 해외주식을 매각한 자금을 원화로 환전해 국내 주식에 장기 투자(잠정 1년간)하는 경우, 해외주식 양도소득세에 대해 한시적(1년)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24일 발표했다.

원래는 해외 주식 매매로 발생한 손익 합산 금액이 25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액의 22%를 양도소득세로 내야 하는데, 1인당 매도금액 5000만원까지는 이 세금을 한시적으로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매도액 5000만원에 대해 총 1000만원의 투자 수익이 났다고 가정할 때, 지금은 세금(165만원)을 감안하면 총 투자 수익률이 20.9%라면, 한시적 세제 혜택에 따라 투자 수익률이 25%로 올라간다.

최근 환율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질타받아온 서학개미들은 대체로 ‘환영’ 입장이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국내 주식에만 투자해 온 국장개미들 시선은 곱지 않다.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테슬라 등 미국 테크주에 노후 자금을 5억원 넘게 투자하고 있는 회사원 한모(53)씨는 “세제 혜택 한도만큼만 팔고 국장에 투자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내 노후를 책임질 주식들인데, 나머지 금액은 굳이 들여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씨는 “자칫 세금 아끼려다 (국장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반을 날릴 수도 있다. 아마 해외 투자 개미들 중 상당수는 국장에서 원금을 대거 잃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며 “세제 혜택이 달콤하긴 하지만, 장기 투자를 생각한다면 큰 인센티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AI(인공지능) 거품 논란에 시장이 흔들리자 상당한 금액을 팔아버렸다는 주부 이모(49)씨는 “23일 기준 보유 주식분에 대해서만 혜택을 주는 건 너무하다”며 “환율 내리는 데 도움 되라고 미리 판 건 아니지만,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서운해했다.

서학개미인 직장인 박모(48)씨는 “양도세 면제가 세후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주식이란 게 기본적으로 앞으로 기업 전망에 따라 보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인데 세금 감면만으로 주식 처분을 유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면서 “정부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투자 관련 결정을 하라는 얘기냐. 정부 정책 실패 책임을 개인 투자자에게 돌리는 정부가 한심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전향 개미’, ‘귀순 개미’들을 위한 리쇼어링 계좌, 일명 ‘RIA(Reshoring Investment Account)’를 만들어 이 안에서 투자금이 실제 들어온 후 국내 주식에 투자되는지, 얼마나 유지되는지 들여다볼 것이라는 부분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투자자도 있다. 정부는 현재 해외주식 계좌의 주식을 신생 RIA 계좌로 이체한 후 RIA 계좌에서 매도 후 환전해 여기서 국내 주식과 국내주식형 펀드만 매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해외주식 매수는 불가하다.

한편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는 국장 개미들은 환율 잡겠다고 서학 개미에게만 세금 혜택을 주는 게 불공정한 처사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국내 대형 증권사 계좌를 분석해보면 전체 주식투자자 중 약 80%는 국내 주식만 투자하고 있다. 해외 주식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문모(67)씨는 “해외 투자한 돈 끌어와 국내 주식 사라고 하면 환율도 잡고 주가 부양에도 도움 되는 ‘일거양득’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런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세금을 고무줄처럼 적용하는 게 적절해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RIA 계좌에서 국내 주식을 사도, 다른 계좌에서 미국 주식을 계속 사는 건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