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연합뉴스

연말 증시의 주도주가 인공지능(AI)에서 전통 산업(올드 이코노미)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그간 증시 급등을 이끌던 반도체·AI 관련 대형주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낮고 수급 분산 효과가 기대되는 전통 산업이 연말 ‘산타 랠리’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AI 대신 러셀2000 주목

17일 기준 미국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 지수는 최근 한 달간 7.6%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S&P500 지수는 1.9% 오르는 데 그쳤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 역시 1.8% 상승에 머물렀다.

최근 엔비디아, 오라클, 브로드컴 등 AI 대표 종목들이 AI 버블론 여파로 조정을 받는 가운데, 금융·산업·소비·헬스케어 등 전통 업종으로 자금이 분산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일 오라클이 장 마감 이후 실적 발표에서 지난 분기 매출이 160억6000만달러로 시장 예상치(162억1000만달러)를 밑돌았다고 밝히자, 다음 날 주가가 10% 넘게 급락했다. 브로드컴은 지난 11일 실적 발표에서 시장 기대를 웃도는 매출과 실적 전망을 제시했음에도 이후 주가는 약세를 보였다.

iM증권은 16일 보고서에서 “브로드컴과 오라클 실적 발표 이후 AI 기술주의 조정 국면 속에서 헬스케어, 유틸리티, 임의 소비재 업종으로 순환매가 나타나고 있다”며 “AI 기술주 조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온큐, 스트래티지 등 양자 컴퓨터·가상 자산 관련주도 일제히 하락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16일에는 오라클이 2.1%, 브로드컴이 0.4% 각각 상승 마감했다.

◇한국도 삼전·하닉 주춤, 소형주 강세

국내 증시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되고 있다. 지난 16일 코스피는 10거래일 만에 4000선 아래로 내려왔다. 그간 국내 증시를 이끌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AI 버블론 여파로 주춤한 영향이 컸다. 이달 들어 16일까지 삼성전자는 2% 상승에 그쳤고, SK하이닉스는 1.5% 하락했다.

대형 반도체주가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AI 관련주에 집중됐던 수급이 완화되는 모습이다. 대신 전통 산업과 소비재 등 ‘올드 이코노미’ 종목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달 들어 16일까지 유가증권 시장 시가총액 1~100위 종목으로 구성된 코스피 대형주 지수는 1.51% 상승한 반면, 101~300위인 코스피 중형주와 301위 이하 소형주 지수는 각각 2.08%, 2.99% 상승했다.

특히 이 기간 KRX 지수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KRX300자유소비재 지수로, 7.9% 상승했다. 2위는 KRX 자동차지수(+6.6%)가 차지했고, KRX경기소비재지수(+6.0%), KRX운송(+5.1%) 등이 뒤를 이었다. AI 관련주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낮고 실적 가시성이 확보된 업종으로 연말 수급이 이동한 결과로 풀이된다.

◇숨 고르는 AI, 산타 랠리 합류할까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순환매 장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AI 중심의 주도주 흐름이 꺾였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진단한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지수는 누적된 기술적 부담으로 촉발된 과열 완화 차원의 조정을 11월부터 겪고 있다”며 “이번 순환매를 추세적 변화로 보기는 어렵고, 내년 1월 이후 다시 초대형주로의 사이즈 로테이션(순환)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계속되는 버블론에도 AI 종목에 대한 투자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I 데이터센터 과잉 투자와 중복 투자 우려는 2000년 IT 버블 당시 네트워크 장비 업종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며 “내년 2분기까지 고객사들의 재고 축적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 서프라이즈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가 조정 국면에서는 저점 매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