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연합뉴스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 상장을 염두에 둔 자사주 활용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투자자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주가는 이날도 전날 대비 3.7% 상승한 58만7000원에 마감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ADR 발행을 통해 투자 저변 확대, 저평가된 밸류에이션 해소, 대규모 투자금 조달 창구 확보 등을 노려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ADR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상장 자체가 아니라 상장 이후 의미 있는 거래 규모를 확보하느냐이다. 충분한 거래량과 안정적 수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밸류에이션 재평가와 글로벌 자금 유입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한국 기업 8번의 ADR 시도, 효과 미미

지난 9일 SK하이닉스는 ‘자사주 미 증시 상장 추진 보도’에 대한 조회 공시 답변에서 “당사는 자기 주식을 활용한 미 증시 상장 등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ADR 발행이 현실이 될 경우 SK하이닉스는 미국 시장에 ADR을 발행한 국내 아홉 번째 기업이 된다. 1994년 10월 포스코홀딩스를 시작으로 한국전력·우리금융지주·신한지주·KB금융·LG디스플레이·SK텔레콤·KT 등 8개 기업이 ADR을 통해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

그런데 대부분 미국 내 거래량이 적고, 가격 재평가 기능도 사실상 작동하지 못해 ‘유령 상장’ 아니냐는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ADR을 발행한 국내 8개 기업 중 미국 시장 거래량이 국내보다 많은 기업은 KT 한 곳뿐이다. 대부분 ADR의 일평균 거래량이 100만 주가 채 되지 않았다. 국내 1호 ADR 발행 기업인 포스코홀딩스의 경우에도 미국 내 거래량이 국내 3분의 1 수준인 13만7600주로 나타났다.

◇TSMC는 ‘ADR 교과서’… 하루 거래액만 5조원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대만 TSMC처럼 ADR 성공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TSMC는 1997년 10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ADR을 상장했고, 이후 신규 자금이 대량 유입되면서 뉴욕 증시가 주요 투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TSMC의 뉴욕 증시 시가총액은 1조5370억달러(약 2260조원), 일평균 거래량이 1000만주를 넘고, 하루 거래액도 39억달러(약 5조7365억원·9일 기준)에 달한다.

ADR 발행 이후 TSMC 주가가 재평가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TSMC ADR의 상승률은 50.5%로, 대만에 상장된 본주 상승률(41.3%)보다 높았다. ADR이 본주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고 있고, 특히 AI 열풍 이후 프리미엄이 더 크게 붙고 있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 ADR로 마이크론 넘어서나

하이닉스가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미국 경쟁 기업인 마이크론을 넘어설 수도 있다. 최근 국내 증시 급등 덕에 SK하이닉스(427조3374억원)의 시가총액은 마이크론(약 417조6833억원)을 뛰어넘었지만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0.8배 수준으로 마이크론(24.7배)에 비해 훨씬 낮다. 돈을 훨씬 더 잘 버는데, 주가는 저평가돼 있는 것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SK하이닉스가 ADR을 발행할 경우 마이크론과의 밸류에이션 갭을 단숨에 좁힐 수 있다”며 “ADR만이 아닌, ‘주주가치 제고’ 계획까지 동반되면 주가는 당사의 적정가치(주당 91만원)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ADR(美 주식예탁증서)

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은 미국 내 은행 등 예탁기관이 해외 기업의 주식을 보관한 뒤 이를 기초로 발행해 미국 증시에서 주식과 동일한 효력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증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