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의 새 주인이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매각 주관사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를 이지스운용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번 인수전은 애초 흥국생명과 한화생명 간 ‘국내 보험사 2파전’으로 전망됐지만, 힐하우스가 본입찰 이후 인수가를 1조1000억원까지 끌어올리며 판세를 뒤집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을 제시한 흥국생명은 최고가를 적어냈음에도 뒷순위로 밀렸다.
이번 거래의 최대 변수는 금융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다. 이는 자금 출처, 재무 건전성, 지배 구조의 투명성 등을 기준으로 금융회사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절차다. 특히 이지스운용은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국내 최대 부동산 운용사인 만큼, 이번 심사가 한층 엄격하게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물론 2015년 안방보험의 동양생명·ABL생명 인수 사례에서 보듯 중국계 자본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융 당국이 적격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힐하우스 창업자 장레이(张磊)를 둘러싼 우려도 존재한다.
중국 허난성 출신인 장 대표는 인민대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한 뒤 예일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고, 이후 텐센트·징둥닷컴 등 중국 빅테크 투자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싱가포르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계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힐하우스가 웹사이트에서 중국 관련 표현을 상당 부분 삭제했고 중국 직원을 줄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힐하우스는 2023년 인수한 SK에코프라임에서 연간 순이익(160억원)을 웃도는 699억원의 배당을 수령해 ‘현금 회수’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외국계 PEF의 과도한 배당이라고 비판했으나, 업계에서는 “지주사의 고금리 차입을 운영회사 명의의 신규 대출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 재무 재조정 성격이 강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편 우선 협상 대상자에서 탈락한 흥국생명은 이번 절차가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흥국생명은 이날 공식 입장에서 “주주 대표와 매각 주관사의 기만과 불법을 묵과하지 않겠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흥국생명에 따르면 매각 측은 본입찰 전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본입찰 이후 우선 협상 대상자 발표를 미루면서 힐하우스에만 추가 가격 경쟁을 제안해 본입찰 최고가를 넘어서는 금액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프로그레시브 딜은 본입찰을 통과한 복수 후보에게 다시 가격 경쟁을 붙여 매각가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경매에 가까운 구조다. 흥국생명은 “매각 주관사가 힐하우스에 우리의 입찰가(1조500억원)를 유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번 결정은 한국의 부동산 투자 플랫폼을 노린 중국계 PEF와 거액의 성과급에 눈먼 해외 주관사가 공모한 결과”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