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5일까지 코스닥 거래 대금이 하루 평균 14조원을 기록, 코스피 거래 대금(평균 18조7500억원)의 75%를 넘어섰다. 작년 같은 기간 코스닥 거래 대금은 코스피의 평균 64% 수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11%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코스닥 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 지수가 48% 오르는 동안 코스닥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2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부가 코스닥 시장 활성화 작업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4일에는 장중 시가총액이 500조원을 처음 돌파하기도 했다.
‘한국판 나스닥’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코스닥은 그동안 ‘2부 리그’ 취급을 받아왔다. 쓸만한 기업들은 코스피로 이전 상장을 거듭했고, 바이오·2차전지 등 특정 업종 쏠림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나 주가 부양에 진심인 정부가 모험자본 생태계 활성화를 통한 코스닥 부흥 작업에 착수하면서, 코스닥을 향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중이다.
◇번번이 힘 못 썼던 코스닥 활성화 대책
과거 정부 차원의 코스닥 시장 활성화 시도는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주가 부양 효과는 길어봐야 1년에 못 미치는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초,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합친 통합 거래소를 출범시켰다. 무분별한 벤처 인증을 줄이는 등 벤처 건전화 작업을 벌이고, 정부 재정이 투입된 ‘모태펀드’를 조성해 자금도 공급했다. 그러나 오히려 코스피보다 하위호환이라는 인식 굳어지며 우량주가 이탈했다. 코스닥 지수는 2005년 한 해 100% 올랐다가 이듬해 40% 고꾸라졌다.
‘창조 경제’를 기치로 내걸었던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도 코스닥 활성화 대책이 나왔다. 중소기업 전문으로 상장 문턱을 낮춘 코넥스 시장 개장, 충분한 매출 없이도 기술력을 보고 상장시켜 주는 ‘기술 특례’ 제도도 처음 도입했다. 그러나 코넥스는 현재 117개 종목 합계 시가총액이 3조원에도 못 미치는 개점휴업 상태다. 주가지수 흐름도 반짝 떴다가 지는 비슷한 패턴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에는 이른바 ‘테슬라 요건’을 도입해 이익 못 내는 기업이라도 성장성을 보고 상장 특례를 허용해줬다. ‘코스닥 벤처펀드’도 도입해 투자금 3000만원 한도까지 10%를 소득공제해줬다. 절세를 노린 부자들의 돈이 몰려들었지만, 자금이 주식보다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으로 쏠리면서 시장이 혼탁해졌다.
박기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20년간 있었던 코스닥 활성화 정책의 결과는 늘 ‘반짝 급등 후 장기 부진’이었다”며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엔 국민연금 투자 의무화까지 거론
금융 당국이 구체안을 마련 중인 가운데, 코스닥 벤처펀드 소득공제 한도를 늘려 부동산으로 못 가는 개인 투자금을 끌어오거나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을 높이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지난 7월 말 코스닥협회·벤처기업협회·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은 국민연금이 보유 자산의 3%를 코스닥에 투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300조원이 넘는 운용자산 중 3%면 약 40조원가량이다.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의 8%에 달한다.
곧 나오는 대형 증권사들의 종합투자계좌(IMA)나 확대되는 발행어음 사업자 등이 모을 돈 20조원도 벤처·코스닥 시장 대기성 자금이다. 당국은 IMA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금액의 25%를 모험자본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시장에서는 기금화를 추진 중인 퇴직연금도 벤처시장으로 들어올 물줄기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작년 말 기준 431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투자가 허용되면 3차 벤처 붐 수준의 코스닥 상승세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코스닥 시장의 핵심 동력은 정책 모멘텀”이라며 “모태펀드와 국민성장펀드 등으로 조성한 대규모 정책 자금이 벤처와 첨단 산업을 경유해 코스닥으로 유입되며 지수를 1100포인트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