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1.37p(1.04%) 상승한 4036.30로 장을 마감했다. /뉴스1

이달 들어 외국인 투자자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완연한 ‘매수 모드’로 돌아서며 연말 랠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14조원 넘게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며 시장을 짓눌렀던 외국인이 이달 들어 3거래일 연속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를 기록하면서 코스피가 4000선을 회복하는 등 투자심리도 살아나는 분위기다. 반도체 등 주도 업종이 대거 조정을 받으며 가격 매력이 부각된 데다 인공지능(AI) ‘거품’ 우려 완화와 환율 변동성 축소가 외국인 매수세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3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727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지난 9월(7조4465억원)과 10월(5조3447억원) 두 달 연속 ‘사자’ 기조를 보였던 외국인은 지난달 14조4562억원을 팔아치우며 월별 기준 역대 최대 규모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12월 들어 다시 매수세로 돌아선 것이다.

◇AI 버블·환율 불안 완화에 돌아온 외국인

지난달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도는 AI·반도체 중심 기술주의 조정과 달러 대비 원화 환율 급등을 동반하며 시장을 흔들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11월 외국인은 수급상 하방 압력을 만든 절대적 주체였다”며 “다만 12월 들어 순매수로 전환하면서 ‘셀(SELL) 모드가 진정됐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3일 코스피가 9거래일 만에 4000선을 회복한 것도 이러한 수급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다.

외국인이 다시 국내 주식을 사들이는 배경으로는 AI 거품 우려가 완화된 점과 환율 안정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 유동성 경색이 완화되고 AI 버블에 대한 공포도 잦아들면서 환율 변동성도 낮아지고 있다”며 “반도체 ‘수퍼사이클’ 국면에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고려하면 추가 매수 여력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관심은 곧바로 반도체로 향했다. 지난달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8조7309억원, 삼성전자를 2조2292억원 순매도해 1·2위 순매도 종목으로 만들었지만, 이달 들어서는 삼성전자 5582억원, SK하이닉스 4254억원을 각각 순매수하며 ‘되담기’에 나섰다. 11월 내내 이어진 강한 매도세로 주가가 하락하며 가격 부담이 낮아진 점도 외국인의 매수 전환을 자극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기계·은행·조선 등 지난달 외국인 매도가 집중됐던 업종들이 대부분 하락 조정을 거치며 다시 진입할 수 있는 구간이 열렸다는 것이다.

◇추세적 복귀일까…브로드컴·FOMC가 분수령

다만 외국인의 ‘컴백’이 일시적 흐름인지, 추세적 복귀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는 신중론도 있다. 미국에서 외국인 수급의 방향을 좌우할 핵심 이벤트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수급 개선이 지속될지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며 “11일(이하 현지 시각) 예정된 브로드컴 실적 발표와 9~10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외국인 복귀 장기화를 판단할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AI 거품 우려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느냐는 점에서 브로드컴 실적이 어느 수준으로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구글이 공개한 차세대 AI 모델 ‘제미나이 3.0’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를 학습·운영한 텐서처리장치(TPU)의 핵심 파트너인 브로드컴도 수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야후 파이낸스에 따르면 브로드컴의 10월 말 기준 분기 매출액 전망치는 174억6000만달러로 전 분기(159억5000만달러) 대비 약 9%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도 1.87달러로 전 분기(1.69달러) 대비 11%가량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최근 브로드컴 목표 주가를 기존 409달러에서 443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3일 종가(380.61달러) 대비 약 16% 높은 수준이다. 조셉 무어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구글의 TPU 공급망은 브로드컴이 설계하고 판매한 제품”이라면서 “이 공급망의 생산량 전망이 상향 조정되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