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치솟는 환율 방어를 위해 서학 개미(해외에 투자하는 내국인 투자자)에 대한 추가 과세 가능성을 언급하자, 서학 개미들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환율 상승의 책임을 온전히 서학 개미들에게만 지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게 불만의 골자다. 현재는 해외 주식을 팔아 연간 250만원이 넘는 수익을 내면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환율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주식 양도세를 강화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세제 활용 도구는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정책이라는 것은 무조건 ‘된다, 안 된다’가 아니라 여건이 되면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해외 주식 추가 과세가 사실상 살아있는 카드임을 확인한 것이다.
◇“투자할 곳 없어 나가는데, 왜 우리 탓만?”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들은 일제히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팔란티어 등 테크주를 갖고 있다는 직장인 박모(48)씨는 “국민이 한국 경제에서 미래를 찾지 못해 외국 주식에 투자하는 나라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주먹구구식 대응만 일삼는 정부 당국자들의 경제 인식에 화가 치민다”면서 “환율 관리 국가 잘못의 책임을 일개 개미한테 떠넘기는 정부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4일에도 원화 약 1000만원을 환전해 알파벳A를 20주 샀다는 직장인 최모(45)씨는 “수수료 등을 포함한 적용 환율이 달러당 1530원쯤 됐지만, 앞으로 미국 주식은 오르고 환율은 더 오를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투자했다”며 “정부가 국내 증시 환경을 좋게 만들거나 주가 오르는 기업을 많이 배출해 투자자를 유인할 생각을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씨는 “지금 당장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외에는 추가 투자하고 싶은 종목이 국내에 없다”고도 했다.
미국 주식으로 2억원가량을 굴리고 있는 주부 이모(49)씨는 미국 주식을 판 후 입금된 달러를 굳이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계속 미국 주식에 재투자하고 있다면서 “집값 오른다고 부동산 세금 올려, 환율 오른다고 주식 세금 올린다고 해, 세금 만능주의 정부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씨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세금 올린다고 군불 때서 환전을 유도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테크주에만 5억원 넘게 투자하고 있는 여의도 직장인 한모(53)씨는 “오히려 양도세를 낮춰도 모자랄 판”이라며 “지금도 세금이 부담스러워서 한 번 투자한 주식을 매도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 포털 사이트 댓글에는 “외환 위기 원인도 국민 과소비 때문이었다고 했듯, 이번에도 정부가 환율 상승을 서학 개미 탓으로 돌리며 전 국민을 가스라이팅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자본시장 살려 국내 투자 유도해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내국인들의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는 68억1000만달러(약 9조9600억원)로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24일까지 48억3625만달러(약 7조1000억원)였다. 지역별로는 미국 주식 순매수가 49억8395만달러(약 7조2900억원)에 달했다(다른 나라에서는 순매도).
서학 개미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 큰손인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올해 8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규모는 486조4260억원으로 전체 운용 자산의 38.6%에 달한다. 국내 주식에 투자한 것(196조2550억원)의 약 2.5배다. 2022년 240조원 수준이었던 해외 주식 투자액이 현재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미국 등 해외 기업들의 주가 상승분도 반영됐지만, 불어나는 적립금을 해외에 전략적으로 더 많이 뿌려 운용한 결과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해외 주식 비율을 2029년 말 42%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숭실대 교수)는 “국내 경제는 부진한 반면 상대적으로 미국은 IT 분야 등에서 앞서나가며 전 세계 투자금을 빨아들이고 있어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자본시장을 살리는 정책을 통해 국내 투자를 유도해야 추가적인 원화 약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