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자체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나이 3.0 프로’와 최신 AI 가속기인 7세대 TPU(텐서처리장치) ‘아이언우드’를 전격 공개하며 글로벌 반도체 증시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던 AI 인프라 시장에 구글을 필두로 한 빅테크들이 자체 칩(ASIC)으로 무장한 ‘TPU 연합군’을 형성하며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특히 시장의 이목을 끈 것은 메타의 행보다. 메타는 오는 2027년 가동 예정인 데이터센터에 구글의 TPU를 사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TPU는 구글이 AI를 구동하기 위해 미국의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업체) 브로드컴과 함께 만든 칩으로, 엔비디아의 GPU 없이도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AI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TPU는 엔비디아의 주력 GPU인 ‘H100’보다 최대 80% 더 저렴해 가성비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때문에 AI 헤게모니가 엔비디아의 독점 체제에서 ‘가성비’와 ‘효율’을 중시하는 다극화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로드컴 3일간 17% 급등… 파죽지세 ‘TPU 연합’ vs 숨 고르는 ‘GPU 진영’
이러한 기류 변화는 글로벌 증시 성적표에 드러났다. 구글의 TPU 설계 파트너인 브로드컴 주가는 지난 24일(현지 시각) 하루에만 11.1% 급등했고, 25일(1.9%)과 26일(3.3%)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3거래일 만에 약 17% 급등했다. 브로드컴이 구글의 TPU 개발 초기부터 반도체 설계를 지원해온 만큼, 구글 TPU 생태계 확장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가에 불을 지핀 것이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역시 21일 3.5%, 24일 6.3% 급등하며 상승 랠리를 주도했다. 다만, 26일엔 소폭 하락(-1.1%)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반면, GPU 진영의 주가는 주춤하고 있다. AI ‘대장주’ 엔비디아는 지난 21일 1% 하락, 24일 2.1% 상승, 25일 2.6% 하락, 26일 1.4% 상승 등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GPU 2위 AMD 주가도 변동성이 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병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했던 AI 인프라 시장 내 구글의 침투력 가속화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반면 엔비디아는 협상력 약화가 우려되며 부진이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韓 반도체 ‘투톱’ 희비 엇갈렸지만…TPU·GPU 모두 HBM 필요
글로벌 칩 전쟁은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흐름도 갈라 놓았다. 그동안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독주하던 SK하이닉스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삼성전자는 구글 TPU 확대의 최대 수혜주로 급부상했다. 실제 주가 흐름을 보면, 지난 21일 삼성전자(-5.8%)와 SK하이닉스(-8.8%) 모두 급락세를 보였지만, 이후 두 종목의 주가 흐름은 엇갈렸다. 삼성전자는 구글 TPU에 HBM과 일반 D램 공급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에 힘입어 24~26일 3거래일 연속 2~3%대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4일과 25일 각각 0.2%씩 하락하며 약세를 면치 못했고, 26일에도 1% 상승에 그쳤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TPU를 통한 구글의 AI 생태계 확장으로 향후 삼성전자의 메모리 공급이 확대, 제미나이 AI에 따른 갤럭시 스마트폰 판매가 증가할 것”이라며 삼성전자를 반도체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다만 ‘GPU 진영’과 ‘TPU 진영’ 중 누가 패권을 잡든, 결국 양쪽 모두 HBM을 필수적으로 탑재해야 하기 때문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모두에 기회가 열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GPU 점유율에 일부 균열이 생길 수는 있지만, 이는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경쟁”이라며 “ASIC 칩에도 고용량 HBM 탑재가 필수적이라 HBM 전체 수요는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