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환율이 1500원 선에 바짝 다가서자 외환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증권사들까지 소집했다. 외환 당국은 앞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수출 기업을 만나고 국민연금과 협의체를 만들어 외환 수급 안정 방안을 협의했다. 25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당국 개입 경계감으로 4.7원 하락한 1472.4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외환 당국은 지난 21일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 등 외환시장협의회 소속 9개 대형 증권사의 외환 담당자들과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결제 수요 확대가 원화 환율 상승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외환시장 개장 직후 대규모로 달러를 환전하는 관행이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실태 파악 차원에서 소집됐다”고 했다.
증권사들은 통상 하루 동안 고객들이 사고판 해외 주식 거래를 밤새 정산한 뒤, 부족한 외화를 외환시장 개장 시점인 오전 9시쯤 일괄적으로 환전해 확보한다. 외환 당국은 이로 인해 환전 수요가 외환시장 개장 직후에 집중돼 장 초반 수급 쏠림을 만들고 환율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01억달러(약 14조8700억원)였던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는 올 들어 지난 24일까지 이미 287억달러(약 42조2600억원)에 달할 정도로 늘었다.
◇정부 “환전 쏠림 줄여달라”… 증권사는 난색
지난 21일 외환 당국이 증권사들까지 불러 비공개 회의를 연 것은 그만큼 원화 환율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도 26일 오전 기자 간담회를 열고 최근 외환시장 상황을 설명할 예정이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9월 말 이후 두 달 가까이 위기 때 수준인 1400원 선을 웃돌고 있다.
특히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의 투자 열기가 고환율에도 식을 줄 몰라 외환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내국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는 68억1000만달러(약 10조3300억원)로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런데 서학개미 거래가 급증하면서 증권사의 환전 수요가 외환시장 개장 직후 한꺼번에 몰리는 구조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증권사 회의에서 외환 당국은 일일평균환율(MAR) 적용이나 실시간 환전 확대 등 쏠림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증권사들은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환전 시점이 바뀌면 고객마다 적용받는 환율이 달라져 민원이 쏟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 당국은 증권사에 앞서 지난 14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등 주요 수출 기업을 불러 달러를 시장에 더 공급할 수 있는지 등을 논의했다. 다만 기업들은 미국 투자 확대와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24일에는 기획재정부·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이 ‘4자 협의체’를 출범시키며 국민연금의 외환 대응도 점검에 들어갔다.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확대하거나 한국은행과 원화-달러 스와프(교환)를 증액·연장하는 등으로 국내 외환시장에서 국민연금의 달러 수요를 줄이는 방법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당장 원화 환율을 확 낮추는 효과가 날지는 미지수다. 위재현 NH선물 연구원은 “8월 국내 전체 해외 주식 투자액 중 국민연금 비율은 41% 수준”이라며 “국민연금보다 많은 해외 주식을 보유한 개인·기관이 있는 만큼 수급 불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