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애쉬번에 위치한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데이터센터. 일명 'US East 1'으로 알려진 곳이다. 워싱턴DC 외곽에 자리한 이곳은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집적지다./로이터 연합뉴스

앞다퉈 대규모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AI(인공지능) 기업들, 과연 그만큼의 수익성을 낼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이 미국과 한국 등 주요국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특히 현금이 빠르게 동나는 이 기업들이 최근 대규모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대목에서 시장의 불안이 극에 달했다. 채권 찍어 투자금 조달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AI 빚투’ 행렬이 마치 반도체 제조 장비 기업들의 대규모 설비투자 치킨게임과 유사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경쟁적 투자, 경쟁적 채권 발행

빅테크 기업은 최근 천문학적인 AI 투자를 위해 대규모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시작은 오라클이었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180억달러(약 26조5000억원)를 채권 시장에서 조달했고, 메타도 지난달 300억달러(약 44조16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구글 모(母)회사 알파벳은 이달 초 250억달러(약 36조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미국과 유럽 시장에 내놨다. 아마존은 가장 최근인 이달 17일 회사채 150억달러(약 22조원)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의 상황을 두고 ‘AI 채권의 홍수(flood)’라고 표현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회사채가 올해 미국 회사채 순 공급량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AI 투자를 위한 채권 발행이 늘어나면서 내년 미국 우량 등급 채권 시장이 사상 최대인 1조8100억달러(약 2664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JP모건)도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돈 잘 버는 기업들이지만, 데이터센터 신설 등에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인 수준이라 빚까지 동원해야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3분기 기준 오라클과 아마존은 영업현금 흐름 대비 자본지출(Capex) 비율이 1배를 넘거나 근접했고, 메타도 영업현금 흐름 대비 자본지출 비율이 0.6배로 과거보다 높아졌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최근 실적 공개 이후 “우리가 과소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다”며 “(데이터센터) 용량을 공격적으로 선행 구축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라고 말했다.

◇빅테크들, 현금이 없나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 기술 기업들의 자산 대비 현금 비율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2020년 자산 대비 현금 및 단기 투자 상품 비율이 약 43%였던 것이 올해 3분기 기준 16%로 뚝 떨어졌다. 구글이나 아마존 등 여타 대표 빅테크 기업들도 추이는 비슷하다. WSJ은 “이 기술 기업들의 지출이 너무 많이 늘어난 탓에 마치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제조 기업들과 유사해지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AI 투자로 큰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기술 기업들에 대해 무한한 인내심을 가질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VC)인 세콰이어캐피털은 지난해 이미 빅테크들의 AI 자본지출이 게임이론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챈 세콰이어 파트너는 “이들 기업의 설비 투자에 대한 논쟁은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또는 ‘설비 투자가 너무 과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면서 “기업들이 경쟁사보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미 국채보다 낮은 금리… 안 찍을 이유 없어”

빅테크들의 대규모 차입은 각 기업의 AI 자본 지출 부담과 주주 환원 축소 우려 이상의 걱정거리를 낳고 있다. 이들이 금융시장 유동성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데다 회사채 조달 금리 전반을 상승시켜 여타 2군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트리플A(AAA) 등급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회사채 금리(2027년 6월 만기·3.45%)는 같은 해 같은 달 만기가 돌아오는 3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3.53%)보다도 낮다.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보다도 MS에 더 낮은 수익률로 대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기업 우량 채권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부채를 적절히 사용하면 이자 비용에 대해 법인세를 차감받을 수 있어 자기자본만 활용하는 것보다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을 낮출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자본 구조가 개선되면 기업 가치는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쏟아지는 이들 하이퍼스케일러(AI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자)들의 회사채 물량을 시장이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9월 이후 4대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880억달러 규모에 달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파벳과 메타는 최근 발행한 채권에 대해 기존 대비 금리를 약 0.1~0.15%포인트 높였다. 이들 기업의 신용도가 높은 덕분에 여전히 금리는 낮은 수준이지만, 최근 들어 채권 발행 물량이 쏟아지면서 기존보다 조금 더 높은 금리를 줘야 수요자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WSJ은 “AI시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 같은 고비용 투자 결정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