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62)씨는 퇴직 후 모은 6억원으로 경기도 화성의 공장 용지 약 330평을 매입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건물을 올려야 돈이 된다”고 조언했지만 그는 직접 운영이나 관리의 번거로움을 원치 않았다. 대신 인근 물류 기업에 토지만 임대했다.

계약은 20년 장기 계약에 월 260만원, 3년마다 3% 인상 조건. 이후 5년 동안 임대료는 꾸준히 들어왔고, 주변 지가는 20% 이상 올랐다. 박씨는 “퇴직금이 월급이 됐다”고 했다. 이처럼 토지를 직접 개발하지 않고 임대만으로 수익을 얻는 방식이 최근 은퇴자들 사이에서 ‘건물 없는 월세’, 즉 새로운 노후 수익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토지의 지가 상승률은 연 2~3%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금리가 내려도 보유세와 관리비 부담을 고려하면, 단순 보유로 얻는 실질 수익률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일부 토지주는 토지를 보유 자산이 아닌 운용 자산으로 전환해 임대를 통한 현금 흐름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토지 임대로 현금 흐름 창출

토지 임대란 토지 소유자가 땅을 장기간 기업이나 개인에게 임대하고, 임차인이 그 위에 건물이나 시설을 세워 사업을 운영하는 구조를 말한다. 토지주는 사용 대가로 임대료를 받되 건물의 운영이나 유지·관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 방법의 장점은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 낮은 관리 부담, 안정적 자산 운용이다. 계약 기간은 통상 10~30년이다. 임대료는 물가나 공시지가 상승률에 따라 주기적으로 인상된다. 건물이 없기 때문에 수선비나 감가상각비가 발생하지 않고 재산세 외에는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다. 덕분에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이 가능하다. 급여나 사업 소득이 끊긴 은퇴 이후에도 매달 꾸준히 임대료가 들어오므로 토지 임대는 사실상 현금 흐름형 자산으로 기능하다.

◇캠핑장·주차장 등으로 재탄생

토지 임대는 단순히 창고나 공장 부지를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토지를 어떤 콘셉트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수익 구조가 달라진다.

강원 횡성의 한 농지를 정비해 약 2000평 규모로 캠핑장 부지를 조성한 뒤, 숙박·레저 업체에 장기 임대한 사례가 있다. 운영자는 시설 투자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토지주는 사용료로 매달 300만원을 받는다. 성수기에는 임대료를 높이고 비수기에는 기본료를 유지하는 유연한 계약 구조를 통해 연평균 5~6% 수준의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다. 단순한 농지가 ‘여가 산업 기반 자산’으로 재탄생한 경우다.

전북 익산의 유휴 토지 3000평을 태양광 발전 사업자에게 25년간 임대한 사례도 있다. 임차인이 설비와 유지·보수를 부담하고, 토지주는 연 4.5%의 고정 임대료를 받는다. 전력 판매 단가가 상승할 경우 일정 비율의 추가 수익을 받는 조항을 포함시켜 물가가 올라도 실질 수익이 줄지 않는다.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도심 외곽 400평 부지를 주차장으로 임대했다. 인근 상가와 관공서 덕분에 수요가 꾸준했다. 관리 업체가 시설비를 부담하는 대신 고정 임대료 월 270만원과 성수기 추가 수익을 받는 구조로 설계했다. 이런 방식으로 별도 투자 없이 연 수익 7~9%를 올렸다.

이처럼 토지 임대는 단순히 남는 땅을 빌려주는 행위가 아니다. 토지 입지, 주변 수요, 산업 구조를 분석하고 적합한 임차인을 찾는 과정 자체가 운용이다. 즉 땅이 돈을 벌게 만드는 하나의 경영 행위인 셈이다.

◇임차인 사업 지속성 확인해야

토지 임대 시 유의할 점들도 있다. 먼저 임차인의 신용과 사업 지속성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업종의 안정성, 매출 구조, 계약 이행 능력을 꼼꼼히 살펴야 체납이나 중도 해지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둘째, 임대료 인상 조항은 반드시 물가 상승률이나 공시지가 상승률 등 객관적인 기준과 연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장기 계약에서도 실질 수익이 유지된다.

셋째, 해당 토지의 이용 계획과 인허가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농지·임야·도시계획구역 등 용도 제한이 있을 경우 계약 이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대 전 관할 지자체의 토지 이용 계획을 점검하는 것이 필수다.

넷째, 수익률을 계산할 때는 세후 기준으로 봐야 한다. 토지 임대 수익에는 임대 소득세가 적용되며, 종합부동산세 포함 여부에 따라 순수익률이 달라진다. 명목상 수익률이 연 5%라도 세금과 비용을 제하면 실질 수익률이 3~4%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중도 매각 가능성을 고려해 계약 승계 조건과 위약 조항을 미리 명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대 계약이 명확할수록 토지의 시장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은퇴자의 제2 연금으로

토지 임대는 자산을 보유에서 운용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설계하는 수단이다.

흔히 노후 현금 흐름을 만드는 방법으로 떠올리는 상가·오피스 같은 수익형 부동산을 떠올린다. 토지 임대는 수익형 부동산 임대보다 관리 부담이 낮다. 수익 형태도 장기적이고 변동이 덜하다. 10~30년 장기로 계약하기 때문에 경기에 따라 공실이 발생할 우려도 상대적으로 작다.

토지는 개발이 아니어도 수익을 낼 수 있으며 그 가치를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이 임대라는 점을 기억하자. 금리가 오르고 자산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시대일수록 단단한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건물을 짓지 않아도 토지는 충분히 은퇴자의 제2의 연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