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거품 논란이 글로벌 증시를 덮치면서 5일 코스피가 장중 한때 6% 넘게 급락하며 3900선 밑으로 내렸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사자’세가 유입되면서 낙폭을 만회, 4000선은 간신히 지켜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2.85% 내린 4004.42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장 초반 외국인 매도세가 집중되면서 오전 한때 6.16% 떨어진 3867.81까지 밀렸다. 급락세에 프로그램 매매가 일시 중단되는 ‘사이드카’가 유가증권(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동시에 발동되기도 했다. 두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함께 발동된 것은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로 증시가 급락했던 작년 8월 5일 ‘블랙 먼데이’ 이후 약 1년 3개월 만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 코스피 상승세를 주도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각각 장중 7.8%, 9.2% 폭락하며 9만6700원, 53만2000원까지 밀렸다. 이후 낙폭을 만회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0만600원, 57만9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CEO “10~20% 조정 가능”
이날 급락의 직접적 원인은 미국발 AI 거품 우려였다. 4일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최고경영자)는 홍콩 금융 서밋에서 “기술주 거품이 상당해 향후 12~24개월 내 주식시장이 10~20%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테드 픽 모건스탠리 CEO도 “10~15% 조정은 오히려 바람직한 수준”이라며 골드만삭스의 과열 경고에 가세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예측한 마이클 버리가 이끄는 사이언자산운용이 9월 말 AI 대표 기업인 엔비디아, 팔란티어의 주가가 하락하면 수익을 얻는 풋옵션을 대거 사들였다는 소식이 더해지며 불안이 증폭됐다.
이에 4일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 지수가 2% 떨어지는 등 하락세가 나타났다. 특히 AI 기반 소프트웨어 기업인 팔란티어는 시장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8% 급락했다. CNBC는 “팔란티어 주가는 올해 들어 150% 이상 급등했고, 향후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이 200배를 넘는다”며 “거품 신호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4%), 테슬라(-5.2%), 아마존(-1.8%), 알파벳(-2.2%) 등 주요 기술주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국내 시장에서도 그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을 집중 매수하며 코스피 상승세를 이끌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며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9월, 10월 각각 7조4465억원, 5조3447억원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던 외국인은 전날 2조2349억원에 이어 이날도 2조70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개인 매수세가 4000선 지탱
다만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이 본격적인 ‘셀 코리아(한국 주식 매도)’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순매도는 10월 이후 급등한 반도체·대형주에 대한 차익 실현 성격이 강하다”며 “중장기 하락 전환보다는 일시적 조정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도 “AI 고평가 논란과 연준 긴축 기조 등 악재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펀더멘털(기초 체력)은 여전히 탄탄하다”고 했다. 하나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강세장에서도 단기적으로 10% 하락 수준의 가격 조정은 흔하다”며 “코스피의 12개월 예상 순이익이 285조4000억원으로 10주 연속 전망치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유동성 장세 속 이익 모멘텀(상승 추세)은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장기적 낙관론도 여전하다. JP모건 등 외국계 투자은행(IB)을 비롯해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내년 증시 전망에서 코스피가 5000선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JP모건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배당소득세 인하, 기업 투명성 강화가 이뤄지면 코스피는 5000을 넘어 최대 60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간 코스피 급등세에도 9월, 10월 각각 10조4858억원, 6조9057억원어치 순매도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순매수세로 돌아선 것도 외국인 매도세에도 불구하고 코스피 등 지수를 지탱하고 있다. 이달 들어 5일까지 개인은 5조8802억원어치 순매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