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0만달러 아래로 5일 한때 내려갔다. 비트코인과 함께 다른 가상 화폐도 하락하면서 코인(가상 화폐) 투자자 사이에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5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날 오전 6시 35분쯤 9만9134달러까지 하락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10만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해 중동 지역 긴장감이 높아진 지난 6월 22일 이후 처음이다. 한때 24시간 전 대비 7% 넘게 하락했던 비트코인은 이후 가격이 다소 회복해 10만1000달러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전일 수준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 10만달러 붕괴
가상 화폐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도 이날 한때 10% 이상 내려가며 3098달러까지 떨어졌다. 리플(-3.9%), 솔라나(-7.1%) 등 주요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코인)도 동반 하락했다. 가상 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전일보다 5.1% 줄어든 3조3500억달러로 집계되기도 했다.
가상 화폐 급락은 여러 변수가 겹치며 발생했다. 일단 미국 연방준비제도 고위 인사들의 잇따른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 발언이 나오며 한때 유력하게 여겨졌던 12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아졌다. 가상 화폐는 주식과 비슷하게 금리가 낮아지고 시장에 풀린 돈이 많아질수록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4일 “12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위한 기준은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기준금리 결정 회의 직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2월 추가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이 아니다”라고 한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36일째에 접어들며 사상 최장 기록을 경신 중인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도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가상 화폐엔 악재다. 의회 내 갈등으로 2026회계연도(10월 1일 시작) 예산안 통과가 미뤄진 데 따른 재정 마비가 시장의 경색으로 번질 우려가 커지며 비트코인 등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은 오는 12일까지 셧다운이 지속되면 미 경제에 110억달러, 26일까지 이어지면 14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인 레버리지 투자 대규모 청산
가상 화폐 급락으로 레버리지 투자자들의 투자금이 대거 청산되면서 하락 폭은 더 커졌다. 일정 금액을 증거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빌려서 투자하는 레버리지 투자는 자산 가격이 특정 금액 아래로 내려갈 경우 거래소가 자산을 강제 매각(청산)해 자금을 회수한다. 주식의 경우 추가 증거금을 입금하라는 안내(마진콜)를 한 다음 돈을 넣지 못할 때만 청산을 하지만, 가상 화폐 거래는 통상적으로 마진콜 없이 즉각 청산이 돼 가격이 급락하면 매도 주문이 일시에 몰려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 코인글래스 데이터에 따르면 5일 이후 15억달러 이상의 가상 화폐 청산이 이뤄졌다. 대부분이 가격 상승에 베팅한 ‘롱 포지션’ 청산으로, 이 중 약 5억7000만달러가 비트코인 관련이었다.
4일 미국에서 불거진 인공지능(AI) 고평가 논란 또한 가상 화폐 폭락세를 부추겼다. 이날 뉴욕 시장에서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 지수는 2% 이상 하락 마감했다. AI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팔란티어는 한때 전일 대비 10%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CNBC는 “인공지능과 가상 화폐는 투자자들이 겹친다. 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쪽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가상 화폐 플랫폼 코덱스의 설립자 하오난 리는 CNBC에 “지금 가상 화폐 시장에 닥친 악재는 매우 심각한 반면 좋은 소식은 거의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고 했다. 반면 맷 호건 비트와이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레버리지 청산과 개인 투자자 이탈이 이어지고 있지만 기관 중심 시장은 여전히 강세”라며 “연말까지 비트코인이 12만5000~13만달러로 상승하고 사상 최고가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