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 시장(코스피)과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 격차가 최근 10년 새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반도체 대장주’ 랠리로 코스피 중심의 상승세가 가속화된 반면,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증권가에선 “연말로 갈수록 종목 위주 장세로 전환이 이뤄지며 코스닥이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코스피 전체 시총은 3477조461억원으로, 코스닥(483조2354억원)의 7.2배에 달했다. 코스닥 시장 개설(1996년 7월) 초기 이후 올해 초만 해도 코스피 시총은 코스닥의 약 5.7배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 코스피가 71.8% 급등하는 동안 코스닥 지수 상승률은 36.6%에 그치며 격차가 급격히 커졌다.
올해 코스피 상승은 외국인 자금이 ‘지·금·조·방·원(지주·금융·조선·방산·원전)’ 등 대형주 중심 업종으로 쏠리면서 이뤄졌다. 이들 업종이 대부분 코스피에 몰려 있는 데다, 하반기 들어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 기대까지 더해지며 외국인 매수세가 집중됐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관망세를 보였고, 개인 비율이 높은 코스닥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중소형주 회복 국면 온다”… 개인 투자자 역할 주목
일각에서는 앞으로 코스닥을 비롯한 중소형주가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부터 코스닥 시장을 비롯한 종목 장세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일반적으로 강세장에서 대형주가 먼저 오르고 이후 중소형주로 상승이 확산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코스피와 코스닥 간 시가총액 격차는 평균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소형주의 경기·실적·정책·수급 여건도 연말부터 개선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변 연구원은 코스피를 4000선까지 끌어올린 외국인·기관 대신, 연말쯤 개인 투자자가 매수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개인이 선호하는 시장 구조를 고려하면 코스피 중소형주보다는 코스닥, 특히 코스닥150 내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라며 “코스닥의 3대 비중 업종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바이오, 이차전지가 종목 장세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도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커질 경우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가 바뀔 수 있다. 2008년과 2014년처럼 금리 인하 흐름이 이어졌던 시기엔 코스피보다 코스닥 상승 폭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당시 코스닥 안에서도 화장품, 조선, 자본재, 제약·바이오, 디스플레이 업종이 주목받았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코스닥, 이차전지·바이오 상승 조짐
4일 증시에서는 코스피와 코스닥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유가증권 시장에서 개인이 2021년 8월 이후 4년 3개월 만의 최대인 2조7000억원어치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지만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2조2000억원, 500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그 결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4% 하락했다. 반면 코스닥지수는 외국인이 2300억원어치 순매수하는 데 힘입어 1.3% 상승했다. 두 지수 간 등락률 차이 3.7%포인트는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최근 급등한 코스피에서 차익을 실현하고, 반대로 덜 오른 코스닥에 진입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 일부 업종은 이미 상승세를 타고 있다. 10월 초 이후 에코프로(101.7%), LS머트리얼즈(54.9%), 에코프로비엠(43.2%) 등 이차전지주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고, 원익홀딩스(113.7%), 유진테크(45.6%) 등 반도체 소부장 기업과 HLB(41.2%) 등 바이오 기업도 강세를 보였다. 여기에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로봇 산업과 협력 의지를 밝히면서 코스닥 로봇 대표주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지난달 30일 이후 40.5% 급등하는 등 로봇 관련 종목들도 일제히 상승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