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투톱’의 약진 속에 한국 상장지수펀드(ETF) 중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는 ETF들이 수익률 상위권을 싹쓸이하고 있다. 28일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3개월 사이 국내 주식형 ETF 360여 개 중 ‘KODEX 반도체레버리지’와 ‘TIGER 반도체TOP10레버리지’가 각각 148.8%와 147.5% 올라 수익률 최상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코스피 상승률(24%)을 압도한다. ‘ACE AI반도체포커스’, ‘UNICORN SK하이닉스밸류체인액티브’, ‘HANARO Fn K-반도체’ 등 주요 자산운용사들의 반도체 ETF도 60~70%대 성과를 거둬 전체 ETF 수익률 상위 10개 중 5개를 차지했다.
◇투톱 많이 담을수록 잘나간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반도체레버리지’ ETF는 한국 대표 반도체 기업 36종목을 모아 놓은 KRX 반도체 지수를 기초로, 이 지수가 하루 1% 오르면 두 배 수준인 2% 수익률을 얻도록 설계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반도체TOP10레버리지’도 에프앤가이드가 추린 반도체 기업 열 곳의 주가 움직임을 두 배만큼 따른다. 두 상품 모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투자 비율을 최근 들어 늘려 왔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연초 이후 지난 27일까지 90.1%, SK하이닉스는 207.6% 올랐다. 덕분에 올해 코스피 시총도 65%나 불어났다. 미래에셋증권 분석에 따르면 두 종목의 시총 증가 기여도가 전체 코스피 시총 증가분의 37.6%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율을 크게 잡은 ETF일수록 코스피 수익률을 앞지르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셈이다.
반도체 산업은 평균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이른바 ‘사이클 산업’이다. 하지만 이번 사이클은 과거와는 다르다는 분석 속에 투자가 집중되는 모습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 반도체는 주당순이익(EPS)과 주가수익비율(PER)이 동반 상승하는 이례적인 상황”이라면서 “인공지능(AI) 시대 데이터 저장 장치 수요가 폭발하면서 반도체의 구조적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없어서 죄송합니다” 반성문도
이 와중에 ‘시총 투톱’을 많이 담지 못한 펀드나 ETF는 비교 대상 지수(코스피)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을 내고 있어 울상이다. 올해 공모 펀드 중 가장 많은 자금이 몰렸던 VIP자산운용의 ‘한가투(한국형 가치 투자)’ 펀드는 최근 3개월 수익률이 0%대를 기록 중이다. 최근 한 달간 수익률은 -2%다. 요즘 흔치 않은 설정액 1조원짜리 대형 펀드인데 메리츠금융지주, 크래프톤, F&F, 오리온, 달바글로벌 등에 투자하면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제외했다.
박영수 VIP자산운용 부사장은 자사 유튜브 채널에 나와 최근 수익률 부진에 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 포트폴리오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반도체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크다 보니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분간은 수익률이 고전하겠지만 모든 테마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반도체 테마가 끝난 그다음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시장 환경이라면 급등하는 종목에 많이 투자한 상품의 수익률이 좋을 수밖에 없지만, 주가가 하락할 경우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특히 주가를 두 배 수준으로 반영하는 레버리지 ETF는 주가가 내려갈 때 더 많이 하락한다. 28일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각각 2.5%와 2.6% 내려가면서 수익률 최상위를 달리던 반도체 레버리지 ETF들의 수익률이 뚝 떨어졌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AI 산업의 성장 전망과 주가의 흐름은 별개의 얘기가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과하게 선(先)반영해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다 보면 건전한 조정 국면을 거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김 센터장은 “향후 AI 수요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산업 사이클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기 때문에 주가가 내려갈 때마다 사 모으는 전략도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