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A(68)씨는 요즘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연금을 다 합쳐도 월 100만원이 안 돼서 생활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예전에 들어둔 종신보험을 이용해 사망 보험금을 살아 있을 때 미리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A씨는 “그때는 내가 죽으면 나머지 가족들 살길이 막막할까 봐 들어 두었는데 지금은 자식들도 다 크고 당장 나의 노후가 더 어렵다”며 “월 20만원 정도라도 생활비를 더 보탤 수 있다면 사망 보험금은 장례비 정도만 남겨두고 미리 받고 싶다”고 했다.
오는 30일부터 종신보험 사망 보험금을 생전에 쓸 수 있는 유동화 상품이 나온다. 사망 보험금은 원래 가입자가 사망하면 유족에게 나오는 보험금이다. 이를 생존한 가입자에게 매년 또는 매월 연금처럼 지급해, 사망 보험금을 노후 생활비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보험료 다 내고 대출 없어야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KB라이프·신한라이프 등 다섯 생명보험사가 이달 30일부터 연(年) 지급형 사망 보험금 유동화 특약 상품을 출시한다. 이 보험사들은 유동화 대상 계약으로 41만4000건, 가입 금액 23조1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내년 1월 2일까지 전체 생명보험사에서 사망 보험금 유동화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사망 보험금 유동화 대상 계약은 75만9000건, 35조4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단 나이가 55세 이상이어야 한다. 사망 보험금 9억원 이하의 금리 확정형 종신보험 가입자가 대상이다.
계약 기간과 보험료 납입 기간이 모두 10년을 넘겨야 하며, 보험료도 완납 상태여야 한다. 또 신청 시점에 보험 계약 대출 잔액이 있으면 안 된다.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같아야 연금 전환 신청이 가능하다. 사망 보험금의 최대 90%까지만 당겨받을 수 있다.
◇늦게 전환할수록 많이 받아
연금으로 전환할 시기는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다. 고연령일수록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재원으로 삼는 해약 환급금이 많이 적립됐기 때문이다.
만약 40세 여성이 매달 보험료 15만6000원을 10년간 납입 완료해 사망 보험금 1억원(예정 이율 7.5%)을 보유한다고 가정해보자. 전환 가능한 최대 비율로 20년간 받는다고 했을 때, 55세 때 연금으로 전환하면 월 12만7000원씩, 20년간 총 306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65세 때 전환을 시작하면 월 18만9000원(총 4543만원)을, 70세 때 시작하면 월 22만2000원(총 5329만원)을, 75세 때 시작하면 월 25만3000원(총 609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개시를 늦출수록 총 수령액이 높아지는 구조이며, 현재 경제 사정과 남은 기대 여명 등을 감안해 선택할 수 있다. 이때 남겨지는 사망 보험금은 1000만원으로 같다. 만약 당장의 노후 자금이 급하지 않다면 유동화하지 않고 사망 보험금으로 받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사망 보험금 유동화는 시행 초기엔 고객센터나 영업점을 통해 대면으로만 신청할 수 있다. 신청 전 보험사에서 유동화 비율이나 기간에 따라 지급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자녀 어리다면 신탁도 고려
지난해 11월부터는 보험금 청구권 신탁(信託)도 가능해졌다. 보험사가 생전 가입자 뜻에 따라 사망 보험금을 운용·관리해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다. 내가 죽고 나서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보험금을 전달할지를 지정해 보험사에 맡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를 두고 사망했을 때 거액의 보험금을 한 번에 주기보다는 나눠서 주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사망 보험금이 6억원이라면, 사망했을 때 1억2000만원을 자녀에게 주도록 하고, 20년간 매월 200만원씩 생활비로 나눠 받을 수 있게끔 미리 설정할 수도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자녀가 어린 가입자는 보험금 청구권 신탁으로 지급 방식을 설계해 놓고, 훗날 본인이 노후 생활이 어렵다면 생전에 현금을 당겨 쓰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