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20년 만에 요즘처럼 신나는 때가 또 있을까 싶어요. 애들 계좌에 묻어놓은 삼성전자는 특히 이뻐 죽겠습니다.”
회사원 김모(53)씨는 연일 치솟는 주가에 마음이 바빠졌다. 기대 이상으로 오른 반도체 종목을 정리한 후 최근 급등세를 탄 이차전지 랠리(강세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할지 저울질하는 중이다. 그는 “한국은행 총재도 지금 주가가 버블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며 “이번 기회에 더 바짝 벌어보려 한다”고 했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의 쌍끌이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에 힘입어 코스피 지수가 24일 4000선 턱밑인 3941.59까지 치솟은 가운데, 이번 랠리 내내 신중 모드였던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비등점을 넘어 끓어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식 예탁금 규모, 주식 활동 계좌 수, 삼성전자 순매수로 전환 등 여러 지점에서 개미 투자자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개미가 본격 참전할 경우 코스피가 4000을 넘어 고공 행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주식 활동 계좌 사상 최대, 예탁금 80조원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 기준 주식 거래 활동 계좌 수는 9480만개에 달했다. 사상 최대다. 주식 거래 활동 계좌란 예탁 자산이 10만원 이상이면서 최근 6개월간 한 차례 이상 거래가 있었던 위탁매매 계좌나 증권 저축 계좌를 말한다. 작년 말 대비 827만개(9.5%) 늘어났다.
2019년 말 2936만여 개에 그쳤던 활동 계좌 수는 코로나 강세장을 거치며 2021년 말 5551만개로 90% 가까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21년 한 해 동안만 새로 주식 거래에 참전한 계좌가 2000만개를 넘어서는 이른바 ‘동학개미(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운동’ 원년이었다. 최근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도 사상 최대인 80조원이 넘은 상태가 이달 중순부터 이어지고 있다. 연초 54조원 수준이던 예탁금은 26조원 불어났다. 2021년 7월 초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3300선을 돌파하기 두 달 전 예탁금이 약 78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로 불어났는데, 최근 이 규모를 넘어선 80조원대에 안착한 것이다.
‘빚투’를 의미하는 신용거래 융자 잔고도 상승세를 거듭해 23일 기준 24조2419억원을 기록했다. 신용거래 융자 잔고는 2021년 코스피가 고점을 형성하고 두 달 뒤인 2021년 9월 역대 최대(25조6540억원)였다. 다만 아직 그 수준에는 못 미친다.
◇개별 주식 팔고 ETF로 순매수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한 이후 100씩 상승한 고지를 넘어설 때마다 개인 투자자들은 순매도 우위였다. 오랜 기간 물려 있었던 삼성전자 등에 대한 투자 원금을 회복하고 수익이 나는 즉시 열심히 팔아치운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일 코스피가 3800선마저 뚫고 올라가자 변화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20~23일 4거래일간 개인은 1070억원 순매수로 돌아선 것이다. 24일엔 다시 대규모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대세로 자리 잡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한 순매수는 1조원이 넘었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개인들은 지수나 테마를 추종하는 ETF 위주의 투자가 일반적인 만큼, (기관 투자자로 분류되는 투자 주체 중) ‘금융투자’ 수급 역시 개인들의 ETF 수급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증권사 등에서 직접 투자할 때 잡히는 수급을 의미하는 ‘금융투자’는 코스피 상승이 본격화한 올해 6월 이후 이달 24일까지 총 10조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외국인 순매수(20조원)의 절반에 해당한다.
23일 자금 순유입이 가장 많았던 ETF는 ‘KODEX레버리지’(3294억원)와 ‘KODEX200’(2317억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포함해 코스피 대형 종목을 빠짐없이 담은 상품이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개인들이 많이 올라버린 종목에 신규 투자하기보다는, ETF를 통해 시장 전체를 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결국 이런 ETF를 통해 삼성전자 등을 주워 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