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를 마치고 10일 한국 증시가 문을 열자,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반도체 주식 사자 행렬이 밀려들었다. 휴장 기간에 미국 엔비디아와 AMD가 오픈AI와 대규모 투자 계약을 발표하는 등 대형 호재가 줄을 이었는데, 이런 소식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6.07% 뛴 9만4400원에, SK하이닉스 주가는 8.22% 오른 42만8000원에 마감했다. 두 종목 모두 종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 기록이다. 메릴린치, 골드만, 모간서울 등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한 ‘바이 코리아’ 행렬은 종일 이어져, 외국인들은 이날 코스피에서만 1조원 넘게 순매수했다. 이 중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 두 종목에 쏠린 순매수만 8000억원어치가 넘었다.
◇반도체가 이끄는 증시… ’시총 상승분의 90%’
미국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대만 TSMC, 네덜란드 ASML 등 글로벌 반도체 주요 기업들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국내 증시가 휴장한 기간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주요국 증시 상승세를 주도했다. 연휴를 마친 한국 증시에도 이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날 일본 닛케이평균, 중국 상하이종합, 홍콩 항셍지수 등 주요 아시아 증시가 모두 내렸어도 반도체 관련 호재가 뒤늦게 반영된 코스피만 대폭 상승 마감했다.
AI(인공지능)발 반도체 랠리는 코스피를 3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로 밀어올렸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새 코스피 시가총액이 약 248조원 불어났는데, 이 중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종목 시가총액만 약 219조원 늘었다. 한 달 시가총액 상승분의 90% 가까이를 국내 반도체 투 톱이자 시가총액 투 톱 기업이 차지한 셈이다.
AI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끄는 ‘반도체 수퍼 사이클(초호황기)’ 전망에 증권사들은 관련 기업들의 목표 주가를 빠르게 올리고 있다. 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AI 특수와 D램 시장 수요 회복을 이유로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기존 대비 14% 올린 11만1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AI발 반도체 수요 증가로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이 발생해, 이 분야 강자인 삼성전자가 수퍼 사이클의 수혜 대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뛰는 삼성전자 주가를 따라잡느라 바삐 목표 주가를 올리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이날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11만5000원으로 올렸다. 현재 목표가는 12만원(한국투자증권)까지 제시돼 있다.
◇환율 상승이 주가 발목 잡을 수도
그러나 가파른 원화 약세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환차손 우려를 자극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1원 오른 1421원에 주간 거래(오후 3시 30분 기준)를 마쳤다. 지난 4월 30일(1421원) 이후 5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를 놓고 한·미 간 관세 협상이 교착 상태인 데다, 연휴 기간 중 ‘다카이치발(發)’ 엔화 약세까지 원화 가치를 떨어뜨렸다(원화 환율 상승). 지난 4일 다카이치 사나에가 신임 일본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이후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53엔대로 뛰자(엔화 가치 하락) 달러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져 달러 대비 원화의 상대적 가치도 하락한 것이다.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총재는 대규모 양적 완화와 재정 지출 확대를 단행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계승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0일 장중 153엔대까지 치솟았다.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2일 97 수준에서 10일 99로 높아졌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지난달 24일 원화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한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며 “앞으로는 엔화 흐름보다는 대미 투자 불확실성 해소 등이 원화 환율을 안정시킬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환율 상승 흐름이 임계치인 1450원을 넘어서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매수세가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면서 “14일 삼성전자 실적 발표 등 반도체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이 향후 주가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