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가 3500 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2일 하루에만 삼성전자를 1조7000억원 넘게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하는 등 최근 한 달 사이 삼성전자를 7조2270억원어치를 샀다. SK하이닉스에 대한 한 달 순매수(1조6656억원)까지 합치면 한국 반도체 ‘투 톱’ 기업에 대한 순매수가 약 9조원에 달한다.

돈 냄새를 잘 맡는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수하는 것은 세계적 인공지능(AI) 투자 호황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초부터 2일까지 최근 한 달 사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해 국내 증시에서 11조4000억원 넘게 순매수했다.

◇AI 효과에… K반도체 투 톱 쌍끌이

앞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다녀간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과장이 아니라 한국 없이는 AI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미국의 대규모 AI 투자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에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를 공급하는 파트너십 투자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가 추진하는 글로벌 AI 인프라 플랫폼으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AI 개발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트먼이 두 회사에 요구한 D램 웨이퍼(반도체 원판) 물량은 월 90만장 규모. 두 회사가 현재 생산하는 HBM 월 생산량은 약 35만장 수준이어서, 현재 생산 물량을 모두 사 가고도 두 배 증산이 필요하다. ‘샘 올트먼이 추석 선물을 주고 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반도체 시장에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되며 HBM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빅3는 HBM 생산을 대폭 늘리며 기존 범용 메모리에 대한 웨이퍼 할당을 줄이고 있어, HBM과 범용 메모리 모두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2일 삼성전자는 3.49% 올랐고, SK하이닉스는 9.86% 급등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월 90만’이라는 숫자를 통해 두루뭉술했던 AI발 수요가 현실화됐다”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투자가 몰려오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해외 투자은행들 “코스피 5000도 가능”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최근 “한국 증시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며 일제히 비중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거래소가 개최한 ‘코리아캐피털마켓콘퍼런스(KCMC)’에서 믹소 다스 JP모건 한국 주식 전략 총괄은 “1년 내 코스피 4000 돌파는 무난하며,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는 5000을 넘어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증시 활황과 금리 인하, 한국 기업의 수출 호조를 근거로 제시하며 “반도체·AI·조선 등 주요 산업 호황과 밸류업 정책, 상법 개정, 자사주 매입 확대가 신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도 지난달 중순 보고서에서 한국 시장 종목의 70%가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면서 “한국 기업의 배당 성향이 선진국 수준인 55~60%로 오르면, 주가가 35%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도 눈높이를 높이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가 (9월 말 기준) 연초 대비 44% 상승했음에도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5배로 여전히 낮다”면서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력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에 4000선 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전반적인 기업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은 걱정거리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가 올해 40% 넘게 상승했지만, 기업들의 이익 추정치는 오히려 하향 조정됐다. 기업 실적이 아닌 주주 환원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라며 “상승 추세가 이어지려면 구체적인 정책의 실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