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한국 국채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 26일 서울 채권 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6개월 만에 최고인 연 2.562%, 10년 만기 금리는 연중 가장 높은 2.943%로 거래를 마쳤다. 만기가 다른 채권들도 일제히 금리가 상승했다. 29일엔 금리 상승세가 주춤했지만, 여전히 8거래일 사이 6% 이상 오른 수준에 머물렀다. 채권 금리 상승은 곧 채권 가격 하락을 뜻한다.

최근 한국 국채 금리를 밀어올린 이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었다. 이들은 26일에만 만기 3년 채권 선물을 액면가 기준 약 2조8000억원, 10년 채권 선물은 약 1조230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부동산 가격과 원화 약세 때문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아지는 상황이 채권 매도를 부른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으로 다가오는 대규모 채권 발행 부담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늘어나는 발행 부담… 채권시장에 켜진 경고등

내년 정부 본예산은 728조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700조원을 돌파했다. 국고채 발행 규모는 232조원으로 역시 역대 최대다. 이 중 차환 발행을 제외한 적자 국채 규모만 110조원에 이른다. 이렇듯 이재명 정부가 확장 재정에 시동을 건 상황에서 미국이 압박 중인 3500억달러 대미 투자금 마련과 150조원으로 증액된 국민성장펀드 재원 마련 등을 위한 채권 발행 부담까지 더해졌다. 채권 발행량 증가는 시장에 채권 공급을 늘어나게 해 채권 가격 하락(금리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10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2025.9.1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대미 투자 펀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시장 전망이다. 연간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산은채·수은채 등 특수채 발행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성장펀드도 당초 5년간 100조원에서 150조원으로 늘어나면서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펀드가 50조원 증액되면서 산은 첨단전략산업기금을 통한 조달 예정 금액도 50조원에서 75조원으로 불어났다. 75조원은 정부의 원리금 상환 보증을 바탕으로 채권을 찍어 조달한다는 계획인데, 당장 내년 발행 한도만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시장 참가자들은 정부가 내년에 역대급 적자 국채를 찍기로 한 가운데 이런저런 정책성 펀드 마련을 위한 정부 보증채까지 쏟아낼 경우 채권 시장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보증하는 저금리·고신용 채권이 시장에 쏟아지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회사채 등은 소외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국고채 발행 물량 자체는 시장이 각오했던 수준이지만, 150조원 국민성장펀드와 관련해 공기업 등의 늘어나는 투자를 고려할 때 정책성 자금 마련을 위한 공사채 발행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채권 시장에 저신용채권 구축(驅逐) 효과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믿는 구석은 ‘세계국채지수’ 편입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국채지수(WGBI·World Government Bond Index) 편입이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정부는 내년 4월부터 한국 국채가 글로벌 채권 지수인 WGBI에 단계적으로 편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지수에 연동하는 글로벌 자금은 약 2조5000억~3조달러 규모다. 한국이 이 지수에 편입되면 전 세계 대형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글로벌 투자 기관들의 투자 자금이 정해진 비중만큼 자동으로 한국 국채에 투자하게 된다. 한국에 배분될 예상 비율은 약 2.05%로, 패시브(지수 추종) 자금 약 72조~86조원이 유입될 전망이다.

당초 오는 11월로 예상됐던 WGBI 편입은 내년 4월로 연기됐다. 지수 산출사인 FTSE러셀은 다음 달 7일 반기 검토 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편입 관련 세부 이행 일정을 점검할 계획이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내년 232조원 수준 국고채 발행으로 공급이 크게 늘겠지만, WGBI에 편입되면 내년 순증 발행액의 절반 이상이 이 지수 추종 자금으로 흡수될 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금 유입이 채권 시장 완충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