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를 찾아 “한국에 투자해 달라”며 한국 경제 투자 설명회(IR)에 직접 나섰다. 이 대통령은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에마뉘엘 로망 핌코 CEO, 헨리 퍼낸데즈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CEO 등 글로벌 투자자들 앞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겠다” “외환 거래 시장 시간 제한도 거의 없애는 방향으로 하겠다”며 거듭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열띤 ‘코리아 세일즈’가 무색하게 26일 주가지수는 두 달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흘러내렸다. 코스피가 전날보다 2.45% 하락해 10거래일 만에 3400선이 깨지면서 3386.05까지 떨어졌고, 코스닥도 2.03% 내린 835.19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하락 폭은 증세 기조가 담긴 세제 개편안 충격으로 지수가 3% 넘게 급락했던 8월 1일 이후 최대다.
두 지수 모두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은 것)가 타격을 줬다. 특히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부담이 부른 가파른 원화 약세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환차손 우려를 자극할 것이란 전망이 현실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 세일즈에도, 외국인 대거 ‘셀 코리아’
이날 아시아 증시는 대체로 약세였다. 최근 주가 랠리를 뒷받침했던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의약품 관세 100% 부과 방침 등을 새로 내놓은 게 원인이 됐다.
미국 2분기(4~6월) 성장률 확정치는 잠정치보다 0.5%포인트 상향 조정된 3.8%(연율)로 발표됐고, 지난주(9월 14~20일) 미국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예상치를 크게 밑돈 21만8000건으로 집계되면서 미국 경기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다음 달 추가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이 끼얹어지며 달러 가치가 상승한 것이 글로벌 증시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닛케이평균(-0.67%), 중국 상하이종합(-0.53%), 홍콩 항셍(-0.51%), 대만 가권(-1.7%) 등 아시아 주가지수가 떨어지며 투자 심리도 일제히 가라앉았다.
그러나 하락 폭이 두드러졌던 건 단연 한국 시장이었다. 외국인들은 이날 코스피에서만 5704억원 순매도를 쏟아냈다. 이 정도 규모의 외국인 순매도는 8월 말 이후 한 달 만이다.
◇강달러 엎친 데 ‘3500억 달러’ 암초 덮쳐
구조적인 달러 강세 흐름 속에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협상이 꼬이면서 원화 가치가 추가 약세 압박을 받는 형국이다. 통상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상승(원화 약세)하는 시기에는 환차손을 우려한 단기 외국인 자금이 한국 주식을 팔고 나가는 흐름을 보이곤 한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1.8원 오른 1412.4원에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그것(3500억달러)은 선불”이라고 강조한 데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이 대미 투자 금액을 3500억달러에서 더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씨티은행은 한국이 최초 약속한 3500억달러 중 외화 표시 채권 발행액을 제외한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야 하는 규모가 연간 860억~960억달러라며, 이는 국민연금의 연평균 달러 수요(연 400억달러 추정)의 2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진욱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대미 투자 3500억달러가 원화 절하(가치 하락)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미 투자 협상이 ‘4년 분산 투자’로 결론 나면 2027년 환율이 1583원, ‘2년 집중 투자’로 결론 나면 같은 해 1628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계산했다. 문 연구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대로 협상 시에는 외환 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외환시장의 불안감도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라며 “대미 투자 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당분간 지속해서 환율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