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가격은 상당히 고평가되고(fairly highly valued)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이 한마디에 세계 주식 투자자들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러잖아도 ‘버블 논란’이 이는 와중이었다. 고용시장이 휘청이는 등 거시 경제가 둔화하는데도 AI(인공지능) 호황에 힘입어 주가지수가 불안한 상승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가 전날보다 2.8% 하락했고 아마존 -3.0%, 메타 -1.3%, 테슬라 -1.9% 등 미국 대표 테크주 일곱 종목(M7)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PER(주가수익비율) 등으로 따진 주가 평가 가치 수준이 2000년 IT 버블 때에 바짝 근접하면서 한동안 이어져온 테크주 랠리가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시장 놀라게 한 파월의 한마디
파월 의장은 23일 미 로드아일랜드주 상공회의소에서 기준금리를 왜 공격적으로 내릴 수 없는지 등에 관한 연설을 한 후 질문을 받았다. 좌담 사회자가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연준이 시장 가격에 얼마나 비중을 두는지, 높은 자산 가치에 대해 더 큰 관용을 갖고 있는지”를 묻자 그는 “우리는 전반적인 금융 여건을 살펴보고 우리의 정책이 목표한 방식대로 금융 여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한다”며 원론적인 대답을 했다. 그 직후 “여러 지표로 볼 때, 예를 들어 주식 가격은 상당히 고평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금의 미국 주식시장이 1999~2000년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두 시기의 가장 뚜렷한 유사점은 미국 주식시장에서 기술 및 관련 산업 종목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2000년 초 미국 대표 지수인 S&P500 시가총액 상위 10종목 중 기술 관련 종목은 5개였다. 지금은 8개에 달한다. 상위 10종목이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당시엔 25%, 지금은 40% 수준이다. 미국 증권사 찰스 슈왑의 케빈 고든 수석 투자전략가는 최근 블룸버그에 “시장의 성과가 몇몇 종목에 더욱 심하게 의존하는 위험에 직면했다”고 우려했다.
현재 주가를 물가 조정 기준 과거 10년 평균 주당순이익으로 나눠 계산한 값을 뜻하는 ‘실러 PER’도 닷컴 버블 때에 근접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고안한 이 지표는 경기 변동과 물가 요인 등을 제거해 주가 자체가 역사적으로 볼 때 고평가 상태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약 17배 수준을 기록한 평균 실러 PER은 닷컴 버블 때는 최고 44배까지 치솟았다. 기업 이익에 비해 주가가 그만큼 높았다는 의미다. 현재는 39배로, 곧 40배 돌파를 눈앞에 둘 정도로 올라 있다.
◇주가 수준, 닷컴 버블 이후 최고
미국 가계의 주식 지분율 역시 닷컴 버블 때 수준인 40% 이상으로 높아졌고, 신용 매수 잔고도 주가가 급등했던 코로나 팬데믹 때를 추월하는 등 여러 지표가 시장이 과열 상태임을 가리키고 있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전략가가 이끄는 분석팀은 최근 보고서에서 “2000년 등 과거 증시 버블 사례를 관찰한 결과 바닥 대비 정점까지 평균 244% 상승했다”며 “M7은 2023년 3월 저점 이후 223% 올라 이에 상당히 근접했다”고 분석했다.
22일 뉴욕 증시를 사상 최고로 밀어올린 일등 공신인 엔비디아의 오픈AI 투자 계획이 하루 만에 빛이 바랜 점도 주가 하락을 유발했다. 엔비디아가 오픈AI에 자금을 제공하면 오픈AI가 그 자금으로 엔비디아 반도체를 구매하는 일종의 ‘벤더(vender) 파이낸싱’(공급업체가 고객에게 자금까지 대주는 구조)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다른 테크 기업의 매출과 순이익이 두 자릿수로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현금 흐름은 줄어드는 것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이들 AI 기업이 데이터센터 투자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앞으로의 AI 투자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늘어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3일 “음료 대기업 코카콜라부터 스포츠웨어 업체 룰루레몬까지 모두가 AI를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이 기술이 자사 사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는 듯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