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한국 주식 시장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16일에도 코스피는 전일보다 1.24% 오른 3449.62에 거래를 마치며 11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사상 최고치도 5거래일 연속 경신했다. 이날 외국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올해 들어 최대인 1조7000억원어치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하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이처럼 코스피가 ‘불장(불타는 장세)’을 연출하는 상황에도 힘을 받지 못하는 업종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방위산업·원전, 이른바 ‘조·방·원’이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지주회사·금융과 함께 증시를 주도하며 ‘지·금·조·방·원’으로 묶여 불렸지만 이달 들어서는 코스피 평균 상승률을 밑도는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상반기 주춤했던 반도체주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금융·반도체·지주회사를 묶은 ‘금·반·지’가 최근 증시의 새 주도주로 떠올랐다.
◇조·방·원 ‘주춤’…코스피 대비 성적 부진
이달 들어 16일까지 코스피는 8.3%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조선·방산·원전 업종을 담은 주요 상장지수펀드(ETF)는 상승률이 다소 저조하다. 한국 조선주로 구성된 ‘TIGER 조선TOP10’과 ‘SOL 조선TOP3플러스’ ETF는 각각 1.1%, 0.3% 하락했다. 원전주로 구성된 ‘TIGER 코리아원자력’ ETF 역시 0.7% 하락했다. 개별 종목별로도 조선 관련주인 한화엔진(-6.1%), HD현대중공업(-3.3%), HD현대미포(-2.8%) 등이 하락세를 보였고, 원전 업종 ‘대장주’인 두산에너빌리티는 2.6%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한전기술(-2.5%), 현대건설(-1.0%) 등도 부진했다. 방산주의 경우 ‘PLUS K방산’ ETF가 16일에만 4% 급등하면서 이달 상승률이 9.7%까지 오르긴 했지만, 전날까진 상승률이 5.5%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6.9%)엔 살짝 못 미쳤다.
전문가들은 조·방·원의 상대적 부진을 미국발(發) 악재 때문으로 풀이한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은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대표적 수출주인 자동차 업종이 약세를 보이고, 조선과 원전 역시 동반 부진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약 485조원)를 투자하고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지만, 후속 논의 과정에 투자 방식과 규모를 두고 이견이 드러나며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 협력 수혜주로 꼽혔던 조선·원전 업종의 기대감이 희석됐다는 분석이다.
◇반도체주 반등으로 ‘금·반·지’ 뚜렷한 강세
반면 금융·반도체·지주회사는 뚜렷한 강세 흐름을 보였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대주주 주식 양도세 대상 확대 철회 결정과 하반기 실적 개선 전망이 금융과 반도체 업종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 업종을 대표하는 KRX증권, KRX보험, KRX은행 지수는 같은 기간 각각 15.1%, 7.7%, 7.6% 올랐다. 특히 증권주는 거래 대금 증가에 힘입어 급등했다. 한국거래소 및 대체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 합산 기준으로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지난달 22조6656억원에서 이달 들어 24조3675억원으로 7.5% 늘었다. 이에 따라 증권사 수수료 수익 증가 기대가 커지면서 키움증권(29.7%), 미래에셋증권(18.3%), 한국금융지주(17.8%) 등이 이달 들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다만 은행주와 보험주는 코스피 평균에 소폭 뒤쳐졌다.
반도체 업종의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KRX반도체 지수는 9월 들어 17.4% 뛰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일부터 11거래일 연속 상승하는 등 이달 들어 29.4% 급등하며 반도체주 투자 심리를 이끌었다. 삼성전자도 하반기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와 내년 D램 공급 부족의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 등에 힘입어 이달 13.9% 급등했다. 지주회사 역시 강세를 보였다. 이달 3차 상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요 지주회사 주식으로 구성된 ‘TIGER 지주회사’ ETF는 9.3%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