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증권가에서는 70억엔(약 659억원)의 ‘주식 로또’를 맞은 수퍼개미가 화제다. 주인공은 40대 남성인 가타야마 아키라(片山晃) 씨.

게임 중독자였던 그는 불과 65만엔(약 6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해 20년 만에 250억엔(약 2352억원)의 자산을 일군 전설적인 투자자로 유명하다.

가타야마 씨는 SBI홀딩스 산하 인터넷은행인 ‘스미신SBI넷은행’ 주식 156만주를 보유한 5대 주주였다.

그런데 지난 6월 일본 최대 통신사 NTT도코모가 금융시장 진출을 위해 해당 은행 인수를 발표하면서 그는 뜻밖의 대박을 맞았다. NTT도코모가 제시한 스미신SBI넷은행의 공개매수(TOB) 가격은 1주당 4900엔으로, 3280엔 안팎에 머물던 주가는 단숨에 49% 급등했기 때문이다.

일본 수퍼개미로 온라인에선 고가츠(五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가타야마 아키라(片山晃)씨./아베마TV 캡처

일본에서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인수자가 기존 기업의 대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 지분까지 모두 인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타야마 씨는 스미신SBI넷은행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이 은행이 지난 2023년 3월 상장했을 때부터 지분을 모아 왔다. 상장 당시 공모가는 1200엔이었다.

일본 아베마TV에 출연한 그는 “보유 지분 전량을 NTT도코모에 매각할 경우 수익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략 70억엔 이상 이익을 낼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단일 종목에서 100억엔 가까운 이익을 낸 적이 있는데,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상장 당시부터 ‘이 종목으로 다시 홈런을 치겠다’고 공언했는데 실제로 실현돼 매우 기쁩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70억엔 ‘주식 홈런’ 터진 日 수퍼개미

그런데 만약 가타야마 씨가 한국에서 주식 투자를 했다면 이런 장밋빛 결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는 선진국 증시에서 당연하게 자리 잡은 ‘의무 공개 매수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의무공개매수 제도란, 대주주가 기업 인수 과정에서 일정 지분 이상을 확보할 경우, 동일한 조건으로 소액주주 지분도 함께 사들이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소액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나눌 수 있도록 한 장치다.

한국도 지난 1997년 소액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지난 1998년 외환 위기 당시 기업 구조조정 등의 이유로 1년 만에 폐지됐다. 이후 여러 차례 재도입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무산됐고, 이 때문에 기업 인수 과정에서 대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식하고 소액 주주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애경산업 사옥 외관. /애경산업 제공

✅의무공개매수제도, 27년 만에 재도입될까

실제 사례로, 지난 12일 애경산업 경영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태광산업도 오너 일가 지분 63.4%만 인수한다. 정확한 인수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약 4500억원으로 가정하면 주당 2만6917원으로, 12일 애경산업 종가(1만5520원) 대비 73% 프리미엄이 붙는 수준이다. 하지만 나머지 32% 지분을 가진 애경산업의 일반 소액주주들은 오너 일가와 동일한 가격에 엑싯(주식 매각)이 불가능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측은 15일 논평에서 “애경산업은 지난 10년간 주가가 52%, 1년간 9% 하락했음에도 소액주주는 이번 매각 과정에서 대주주처럼 높은 값에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고 존재 자체가 무시되고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거래를 기업 인수(Takeover)나 M&A라고 부르지 않고, 지배 주주의 사적 이익(Private benefit)을 위한 거래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일본과 같은 의무 공개 매수 제도가 있었다면, 태광산업은 소액주주 지분까지 모두 매수해야 했을 것이다. 이 경우 수천억 원대의 추가 자금 부담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그는 “기업 인수 시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하고 소액주주의 회수 기회를 보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금융위원회도 새 정부 경제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내년 상반기 도입을 목표로 제도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