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코스피가 사상 최초로 3400선을 돌파하는 등 한국 주식시장이 상승하는 반면 상장폐지돼 시장에서 사라지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폐지된 기업 수는 60여 곳에 달한다. 올해 초 금융 당국이 상장 적격성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대적인 부실 기업 정리에 나서자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 중 주식시장을 떠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상장폐지 60건 돌파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 15일까지 한국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된 기업 수는 62개였다. 지난해의 경우 연간 상장폐지가 69건이었고 2023년엔 한 해 60곳이 상장폐지됐는데, 올해는 3분기까지만 집계해도 60곳을 넘어선 것이다. 스팩(SPAC·비상장 기업의 상장을 돕기 위해 설립되는 합병 전용 상장회사) 상장폐지나 이전 상장 등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올해 상장폐지된 기업 수는 32개다. 전년 동기(26개)보다 역시 많다.
상장폐지 전 ‘경고등’으로 여겨지는 관리 종목 지정 기업 또한 늘었다. 관리 종목은 상장한 회사가 재무 상태나 경영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상장 유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클 때 한국거래소가 투자자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지정한다. 올해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 기업은 총 55곳이다.
◇부실 기업 정리 속도 내는 정부
올해 유독 기업들의 상장폐지가 늘어난 배경에는 금융 당국이 올해 초 발표한 상장 적격성 심사 제도 개편안이 있다. 이 개편안은 시가총액·매출액 등 기업들의 상장 유지 기준을 강화하고 상장폐지 절차는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선안에 따르면 유가증권 시장(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현행 50억원 이상인 시가총액 기준이 단계적으로 강화돼 2028년엔 500억원으로 상향된다. 매출액 기준은 2029년까지 300억원으로 올라간다. 코스닥 시장 또한 시가총액 기준을 현행 4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매출액은 3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기준이 강화된다.
감사 의견 요건도 강화돼 2년 연속 감사 의견이 ‘비적정’으로 나오면 즉시 상장폐지된다. 기존 유가증권 시장에서 최대 4년까지 허용되었던 개선 기간은 2년으로 줄어들며, 코스닥 시장의 경우 심의 단계가 기존 3심제에서 2심제로 전환된다. 코스닥 시장의 개선 기간은 2년에서 1년 6개월로 단축된다.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개편 이후 재무 요건만 고려하더라도 지난해 기준 전체 유가증권 시장 기업의 약 8%, 코스닥 시장 기업의 약 7%가 상장폐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한 부실 기업 정리 필요성을 또 한 번 언급하면서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들의 상장폐지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리매매 평균 하락률 91%… 투자자 유의 필요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부실 기업 정리는 불가피하지만, 상장폐지 과정에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고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특히 상장폐지가 확정된 종목이 정리매매되는 동안 기존 주식 가격 대비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매매가 이뤄지고 있어 투자자들의 유의가 필요하다. 정리매매는 상장폐지 예정 종목을 보유한 주주에게 매도 기회를 주기 위한 절차다. 그런데 해당 기간엔 상·하한가 등이 적용되지 않아, 초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기 세력이 몰리고 주가 변동 폭이 커져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본지가 올해 초부터 지난 15일까지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된 기업 가운데 스팩·자진 상장폐지 등을 제외한 21개 기업의 주가 하락률을 계산해 본 결과 정리매매 개시 전일 대비 마지막 날 주가 하락률은 평균 91%에 달했다. 이 중 15개 기업은 하락률이 90%가 넘었다. 최근 정리매매가 이뤄진 이화전기·이아이디·이트론 등 이른바 ‘이그룹’ 관련주는 주가가 평균 84% 하락 후 상장폐지됐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청산 가치 미만으로 거래되는 이른바 자산주(기업이 보유한 자산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주식)의 퇴출 때는 특히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서 정리매매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상장폐지 과정에 일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