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서 달러화는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원화는 좀처럼 강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7월 말 100포인트에 근접했지만, 최근 들어 97~98포인트 수준으로 내려왔다.
관세가 미국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는 여전히 높다. 하지만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9일 발표한 비농업 고용 지표 연간 수정 결과, 2024년 4월부터 2025년 3월까지 1년간 비농업 일자리 수가 기존 발표치보다 91만1000개 적은 것으로 집계되는 등 고용 지표에서 뚜렷한 부진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올해 안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2~3회 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일 미국 기준금리 예측 모델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내릴 확률은 92%에 달했고, 아예 0.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보는 확률도 8%였다. 통상 금리 인하에 따른 돈 풀기와 경기 둔화 전망은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달러 가치가 내리면 원화는 강세(환율 하락)를 보이지만, 최근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380~1390원대에 머물고 있다.
◇해외 투자 늘고 외국 자금 빠져나가
이 같은 현상의 첫 번째 이유는 자금 흐름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코스피가 급등세를 보였던 지난 5월과 6월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을 각각 13억1085만달러, 2억3185만달러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했으나, 7월(6억8496만달러)과 8월(6억4190만달러)에는 순매수로 전환했다. 반대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했다. 8월 한 달 동안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을 1조4899억원어치 팔아치우며 3개월 만에 다시 매도세로 돌아섰다. 이런 흐름은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에서도 확인된다. 순대외금융자산은 한국인이 해외에 투자한 자산에서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한 자산을 뺀 규모로, 지난해 4분기 1조1000억달러까지 늘었지만 올해 2분기에는 1조304억달러로 줄었다. 외국인 자금 유입이 줄고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이 늘면서 원화의 약세 압력이 커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중국발 변수다. 최근 중국 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응해 인공지능(AI) 반도체 자립을 선언하며 대규모 지원책을 내놨다. 알리바바는 자체 개발한 AI칩을 테스트 중이라고 밝혔고, 현지 주요 테크 기업들도 칩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중국 증시로 끌어모았고,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달 25일 3883.56으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위안화 가치도 소폭 강세로 돌아섰다. 보통 원화와 위안화는 유사한 흐름을 보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중국의 AI 반도체 투자 심리가 위안화만 지지하는 역할을 하면서 원화는 힘을 얻지 못한 것이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한국·대만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상대적으로 약화하면서 원화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대만 달러도 월간 기준으로 미 달러화 대비 2.7% 약세를 보이며 외환시장 내 절하 폭이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매수세 회복에 환율 안정 기대
다만 시장에서는 환율이 연말 이후 점차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환율을 끌어올린 대내외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며 “연준의 금리 인하와 미국 경기 둔화, 국내 경기 회복 흐름은 내년 상반기까지 환율이 점차 낮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환율은 내년 상반기 중 분기 평균 1350~1360원 수준에서 움직이며 서서히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9월 들어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순매수세로 전환한 점도 환율 안정 요인으로 꼽힌다. 10일 하루에만 외국인 투자자는 1조3000억원어치 넘게 국내 주식을 사들이는 등 9월 들어 외국인 누적 순매수 규모는 3조원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