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은 올해 초 출국 항공기 지연 보상에 대해 지수형 특약을 선보였다. 항공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될 경우, 그 시간에 비례해 보험금을 최대 10만원까지 준다. ‘항공기 지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야 쓴 비용을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 기존 방식이었다면, ‘항공기가 일정 시간 이상 지연되면 일정액의 보험금을 무조건 지급한다’는 새로운 방식이다.
일정 조건에 닿으면 손해 사정 없이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이 같은 상품을 ‘지수형 보험’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하루 최고기온이 35℃를 넘는 폭염 일수, 일일 강수량이 80㎜ 넘는 호우 일수, 적설량이 20㎝를 초과하는 폭설 일수 등이 기간 내 며칠 이상이 되면 휴업 손해와 상관없이 약정된 보험금을 주는 기후 보험에도 비슷한 방식이 쓰일 수 있다. 지수형 보험은 보험 상품 중에서 인공지능(AI)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KB손해보험은 지수형 보험 같은 보험 업계 트렌드를 해외여행자 보험에 먼저 접목해 본 것이다.
그동안 손해보험사의 핵심 상품이 아닌 ‘미니 보험’ 정도로 치부되던 여행자 보험이 보험사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보험 실험실’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 가입자가 많아 새로운 보험 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상품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모바일로 가입과 청구가 이뤄져 새로운 특약을 도입하기 좋기 때문이다. 여행자 보험 시장도 커져 올해 보험 업계의 여행자 보험 신계약 건수는 역대 최고치를 깰 전망이다.
◇여행자 보험은 ‘보험 실험실’
보험 기간 별다른 청구 건수가 발생하지 않으면 보험료를 돌려주는 환급금도 여행자 보험을 타고 퍼졌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지난 2023년 5월 여행자 보험 가입 후 사고 없이 귀국하면 보험료의 10%를 돌려주는 ‘안전 귀국 환급금’으로 해외 출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사고가 나야 보상을 받는 기존 보험과 차별화하면서 당시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카카오페이손해보험 가입자가 급증했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작년 국내 해외여행자 보험 시장에서 약 60%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카카오페이손해보험 말고도 대부분 여행자 보험 상품에서 ‘귀국 축하금’과 같은 이름으로 보험료 일부를 돌려주고 있다.
환급 방식은 다른 보험 분야로 퍼지고 있다. 건강보험에서도 보험 기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무사고 고객에게 보험료를 깎아주는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삼성화재가 가입 후 일정 기간 무사고 조건을 유지하면 보험료를 최대 52.5% 돌려주는 ‘건강 리턴’ 보장을 지난 5월 선보였고, 한화생명도 이달 초 경증 유병자가 가입 후 1년간 무사고 시 보험료 할인 혜택을 주는 건강보험을 출시했다.
여행자 보험에서 가입자 호응을 확인한 무사고 환급 제도를 보험사들이 다른 보험 상품에도 적극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커지는 여행자 보험 시장
여행자 보험 시장에는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삼성화재가 지난 7월 출시한 ‘365 연간 해외여행 보험’은 한번 보험을 들어놓으면 1년간 무제한으로 해외에 나갈 때마다 최장 31일까지 여행자 보험을 보장한다. 여행자 보험은 주로 일회성으로 드는데, 이 상품은 해외 출국이 잦은 가입자를 겨냥해 매번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번거로움을 없앴다.
롯데손해보험의 경우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실시간 가입 시스템을 도입했다. 보장 개시 최소 수 시간 전에는 가입해야 하는 업계 관행에서 벗어났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여행자 보험은 필요에 의해 스스로 드는 2030 가입자가 많아 새로운 형태의 보험 상품에 거부감이 적다”며 “젊은 신규 고객을 자사 모바일 앱으로 유인하는 효과도 있어 보험사들이 실험적인 상품을 내놓곤 한다”고 했다. 작년 여행자 보험 가입자의 약 55%는 2030 세대였다.
여행자 보험 시장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2021년 14만3140건에 머물던 여행자 보험 신계약은 작년 272만7282건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신계약은 173만3195건인데, 하반기에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여행자 보험 신계약은 최고치를 찍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