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역대 최고가 근처까지 올랐다, 5000포인트 간다, 이런 소리 나오면 뭐해요? 내 계좌는 아직도 ‘파란색’인데요. 국장(국내 주식시장)에서 돈 버는 사람 있긴 있나요?”
3년 전 퇴직금으로 주식을 샀던 주부 양모(44)씨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미국 주식을 사놨더라면 마음고생할 일도 없을 텐데, 지금 그의 계좌는 두 자릿수 마이너스다. 포스코홀딩스(-48.2%), 카카오(-51.9%), 크래프톤(-33.4%), 삼성전자우(-23.8%) 등이 피 같은 퇴직금을 쪼그라뜨린 ‘문제아’들이다.
본지가 에프앤가이드와 함께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 종목 2630개의 지난 10년간 최고가 대비 현재 주가(8월 29일 종가 기준)를 전수조사한 결과, 98.6%인 2594개 종목이 현재 최고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내 최고가 대비 현재 주가의 차이를 계산한 ‘괴리율’은 평균 60.9%에 달했다. 모든 종목을 고점에 샀다면 수익률이 -60.9%라는 의미다. 코스피 지수는 역대 최고가에 바짝 근접했어도 개별 종목을 놓고 보면 전혀 다른 스토리가 펼쳐지는 셈이다.
◇주식이 너무하네…”꼭지에 물리면 답이 없다”
코스피와 코스닥지수 모두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시총 상위 종목이 오르면 지수도 상승 바람을 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미들 투자 바구니엔 다양한 종목이 있고, 하필 개별 종목들이 꼭지에 물렸다면 수익률은 처참한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내 대형 A 증권사 고객 중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5일 기준 73%가 손실을 보고 있고 B 증권사도 70%로 비슷한 형편이다.
주가가 고점 대비 90% 넘게 폭락한 종목도 274개에 달한다. 코스닥 종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총 상위 50위 중 괴리율이 큰 종목은 포스코퓨처엠(괴리율 -75.6%), 삼성SDI(-74.1%), 에코프로비엠(-73.8%), 카카오뱅크(-73.2%), LG화학(-73.0%) 등이다. 이차전지주들이 많다. 뼈아픈 학습 효과 때문일까. 개미들은 이번 ‘이재명 랠리’ 불장에서도 섣불리 뛰어들지 않는 모습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8조5000억원 넘게 순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은 것)를 했다. 같은 기간 미국 주식은 1조5300억원어치 순매수한 것과 대비된다.
◇K주식시장은 왜?
대부분의 종목이 맥을 못 추는 데는 산업 구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철강, 화학, 조선, 자동차 등 대표 산업들이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고, 경쟁국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국이 급속 성장을 멈춘 데다 자급자족을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이익 성장세가 꺾였다. 백지윤 블래쉬자산운용 대표는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산업 관련 종목들이 부진한 영향이 크다”고 봤다.
진작 퇴출됐어야 할 좀비주(경영 악화 등으로 상장폐지 위기이나 살아남은 종목)나 동전주(주가 1000원 미만 소형주)가 많다는 문제도 있다. 미국 증시는 우리보다 시가총액이 약 40배 크지만, 뉴욕 3대 지수 상장 종목 수는 우리보다 1.3배 많을 뿐이다. 그만큼 퇴출을 쉽게 해 시장 물을 흐리는 종목들을 빨리 솎아내고 있는 것이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세상이 빠르게 바뀌면서 시장 주도주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흘러간 테마는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