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8월 한 달간 답답한 ‘박스권’ 흐름을 보이자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미국 주식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감소세로 돌아선 반면, 이른바 ‘서학 개미’로 불리는 해외 주식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190조원에 육박했다.
2일 한국거래소 및 대체 거래소 ‘넥스트레이드’ 등에 따르면, 한국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지난 6월 33조40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7월 27조6782억원, 8월 22조6656억원으로 두 달 연속 줄었다. 반면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심리는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코스피가 급등세를 보였던 지난 5월과 6월 각각 13억1085만달러, 2억3185만달러의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를 기록했으나, 코스피의 상승세가 둔화하기 시작한 7월(6억8496만달러)과 8월(6억4190만달러)에는 순매수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지난달 29일 기준 한국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유 금액은 1336억1264만달러, 한화로 약 186조원에 달했다.
투자 자금의 이동 배경엔 한국과 미국 증시의 엇갈린 성과가 자리 잡고 있다. 8월 한 달간 코스피는 1.8% 하락하며 3100~3200 선의 박스권에 갇혔다. 반면 미국 S&P500 지수는 지난달 28일 6500선을 돌파하는 등 8월에 1.9% 상승하며 강세를 보였다.
◇돌아온 ‘서학 개미’ 투자 트렌드도 변화
‘서학 개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3월만 해도 한국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주식은 테슬라(10억1251만달러)였고, 2위와 3위는 각각 미국 주요 반도체주 등락 폭이 3배로 반영되는 상장지수펀드(ETF) ‘디렉시온 데일리 반도체 불 3배’(6억3551만달러), 테슬라 주가 등락 폭이 두 배로 반영되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불 2배’였다.
반면 지난달 한국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미국 주식은 미 최대 건강보험 업체 유나이티드헬스그룹으로, 한 달간 순매수액이 3억1572만달러에 달했다. 이 회사는 의료비 지급 증가, 갑작스러운 경영진 교체, 미 사법 당국의 반독점 조사 등 잇단 악재로 주가가 연고점 대비 반 토막 났다. 그러나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올해 상반기에만 이 회사 주식을 15억7200만달러어치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저가 매수세가 대거 유입됐다.
8월 순매수 2위는 ‘비트마인 이머전 테크놀로지스’(2억5277만달러)였다. 이 회사는 원래 가상 화폐 채굴 기업이었지만 지난 6월 세계 2위 가상 화폐인 이더리움을 사들여 ‘가상 자산 금고’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뒤 주가가 4달러대에서 135달러까지 폭등했다. 다만 현재 이 회사 주가는 40달러대까지 내려온 상태다. 이 밖에도 인공지능(AI) 기반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1억7522만달러·4위), 소형 모듈 원전(SMR) 기업 뉴스케일파워(1억4887만달러·5위) 등이 새롭게 순매수 상위권에 올랐다.
◇9월에도 이어질까… ‘국장’ 반등 조건은?
당분간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투자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달 한국 증시 역시 뚜렷하게 오를 요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장기 금리가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 계절적 요인 등으로 9월 주식시장은 약세 흐름이 예상된다”며 “특히 한국에서는 기업들의 순이익 감소 우려가 부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불확실성, 미국발(發) 관세 충격 가능성 등이 지수 상승을 제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특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반등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두언 연구원은 “경기 침체를 동반하지 않는 금리 인하,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완화 등이 이뤄진다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지영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기업 지배 구조 개선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증시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