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도발로 크게 고꾸라졌던 중화권 주식시장에 요즘 불이 붙었다. 본토 대표 지수인 상하이종합지수가 최근 3800을 넘어서며 2015년 역사적 ‘불장’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역외 홍콩 증시가 먼저 뛰더니, 최근 한 달 사이에는 본토 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에 육박하며 상승에 속도가 붙었다.

미국 다음으로 큰 주식시장에 10년 만에 볕이 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대세 상승’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중국이 미국을 추격하는 테크 제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만큼 투자가 몰리는 게 당연하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 0%대 침체가 이어지는 등 거시 경제는 증시와 딴판이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불장’ 왔다

지금 중국 증시를 밀어 올리는 건 ‘부추들’이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다. 잘라내도 계속 자라나는 부추처럼 손해를 봐도 털어내고 끊임없이 시장으로 유입된다 해서 2015년 급등장 때 널리 퍼진 말이다. 중국 가계의 대표적 재테크 수단인 머니마켓펀드(MMF) 수익률이 연 1.1% 정도이고, 예금 금리는 0.95%로 사상 첫 0%대에 진입한 초저금리 속에 주식의 상대적 매력은 올라가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상하이 거리 전광판에 상하이지수와 선전지수가 표출된 모습./로이터·연합

특히 중국 정부가 최근 국·공채 이자소득에 대한 과세를 재개하는 한편 해외 투자 소득에 대한 세금 징수도 강화하면서 주식으로 눈을 돌리는 개인 투자자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올해 신규 증권 계좌 개설 건수는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특히 7월 한 달에만 신규 계좌가 전년 대비 71% 급증했다.

박주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국 가계는 경기 우려와 부동산·증시 동반 부진 때문에 과거 대비 저축을 크게 늘리고 채권 등 안전 자산을 중심으로 투자해왔다”며 “그러나 지난 2년간 예금 금리가 크게 하락하면서 가계 자산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진영

◇벌써 나오는 과열 경보음

7월 이후 상하이종합지수가 13%, 홍콩 항셍지수가 7% 올라 본토 주식시장의 상승률이 홍콩을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정작 중국의 경제 자체가 경기 침체 속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최근 내놓은 통계를 보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에 머물렀다. 1월 춘제(중국 설) 연휴 덕분에 0.5% 반짝 올랐던 물가 상승률은 2월 -0.7%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0%대 근처를 맴돌고 있다. 생산자물가는 34개월 연속 하락세다.

주식시장과 경제의 괴리가 커지면서, 시장에선 벌써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26일 상하이지수가 0.39% 내린 데 이어, 27일에는 1.76% 하락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상하이에 본사를 둔 중국 국금증권은 이날 투자자들에게 공지를 보내 증거금 비율을 80%에서 100%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증거금은 주식을 매수하거나 공매도할 때 증권사에 예치해야 하는 최소한의 보증금이다. 시장 변동성이 크거나 과열 양상을 보일 때 당국이나 증권사가 증거금 비율을 높여 열기를 식힌다. JP모건은 “중국 경제는 여전히 내수 부문 동력이 약해 디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2015년과는 다르다?

중국 주식 낙관론자들은 2015년과는 달라진 중국 산업 경쟁력에 주목한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중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캠브리콘 테크놀로지스는 중국의 첨단 AI ‘딥시크’ 열풍 이후 국산 기술 사용을 독려하는 중국 정부 방침에 따라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 상반기 최대 이익을 냈다. 덕분에 연초 600위안대이던 주가가 현재 1440위안까지 치솟았다.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언론은 27일 국무원이 전날 ‘AI플러스(人工智能+)’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국가 로드맵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2027년까지 산업·소비·의료·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AI를 적용한다는 정책으로, 2030년까지 차세대 스마트 단말기와 스마트 시스템 보급률을 9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중국 증시로 쏠리는 관심이 커질수록 같은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한국 증시의 소외 가능성은 커진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차이나 모멘텀(상승세)’이 부각될수록 한국은 투자 자금 배분 과정에 소외되는 흐름이 나타나곤 했다”며 “이번 중국 주식 활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