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투명 교정기 제작 업체 그래피는 공모가(1만5000원)보다 24.9% 낮은 1만1260원에 첫날 거래를 마쳤다. 앞서 지난 20일과 21일 각각 상장한 한라캐스트·제이피아이헬스케어는 공모가보다 약 2~8% 높은 수준에서 첫날 거래를 마감했지만, 기업공개(IPO) 시장의 열기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8월 들어 방위산업 전문 기업 삼양컴텍(상장 당일 수익률 116.1%), 정밀 화학 소재 기업 아이티켐(92.9%), 조선업체 대한조선(84.8%) 등이 상장 당일 공모가 대비 높은 상승률을 보이며 8월 ‘새내기주’ 성적을 떠받치고 있지만, 신약 개발 바이오 기업 지투지바이오를 제외하면 이달 상장한 8개 종목(스팩, 리츠 제외) 중 7개 종목의 현재 주가가 상장 당일 종가를 밑돌고 있다. 첫날 급등했던 종목조차 결국 다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공모 청약 후 상장 당일 단기 매매로 소소한 차익을 남기는 ‘치킨값 벌이’는 지난 몇 년간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상장 당일 공모가 대비 주가가 급등하면서 ‘단타로 치킨 한두 마리 값은 건진다’는 의미였는데, 8월 들어 IPO 시장이 식으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치킨값 벌이도 어렵다”는 푸념이 나온다.
◇올해 초 IPO 시장 침체… 5~6월엔 반짝 회복
IPO 시장 침체는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공모가 대비 상장 당일 종가 상승률은 작년 상반기 평균 94.2%에서 하반기 13.3%로 급락했다. 이런 분위기가 올해 초까지 이어지며 지난 1월엔 상장한 4개 종목 가운데 3개 종목의 상장 당일 종가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1월 상장 종목의 공모가 대비 상장 당일 종가 상승률도 마이너스(-14.4%)로 곤두박질쳤다.
1조2000억원 규모의 공모 금액으로 올해 ‘최대어’로 꼽힌 LG씨엔에스가 2월 5일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9.9% 낮게 마감하는 등 2월에도 11개 신규 상장 종목 중 5개의 상장 당일 종가가 공모가를 밑돌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3~4월에도 이런 상황이 대체로 이어졌다.
5월 들어 분위기는 다소 바뀌었다. 코스피가 본격적인 반등세를 타자 IPO 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5월과 6월 상장 종목은 각각 8개, 3개였는데, 전 종목이 상장 당일 공모가 대비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5·6월 공모가 대비 상장 당일 종가 평균 상승률도 각각 93.8%, 62.7%에 달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4월 미국발(發) 글로벌 관세 인상 이슈로 낙폭을 키웠던 증시가 반등했고 소비재·로봇·바이오 등 성장 산업 내 기업들이 IPO 시장에 등장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면서 “기업들의 희망 공모가 조율(하향 조정)이 잦아지는 등 눈높이를 낮춘 것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졌다”라고 설명했다.
◇남은 기간 ‘대어급’ IPO 없을 듯
7월과 8월(26일까지) 각각 7개, 8개 기업이 상장했지만, 공모가 대비 상장일 주가 평균 상승률은 각각 50.6%, 48.9%에 머물러 앞선 두 달에 비해 침체된 분위기다. 7월 중순 이후 코스피·코스닥지수가 각각 3100~3200, 770~820을 오가는 등 ‘박스권’에 갇히면서 신규 상장 종목들의 주가 역시 탄력을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남은 기간에도 IPO 시장의 시계(視界)는 좋지 않다. 우선 투자자의 관심을 끌 대형 IPO가 사실상 예정돼 있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한때 한화에너지·케이뱅크 등이 하반기 상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올해 내에 상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지난달부터 시행 중인 ‘의무 보유 확약 우선 배정제’도 변수다. 단타 매매를 줄이기 위해 기관 투자자에게 일정 비율의 물량을 우선 배정하되, 일정 기간 보유를 의무화한 제도다. 기관 투자자들의 부담이 커져 오히려 청약 수요를 줄이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새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시장 참여자들이 적응 기간을 거칠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종목별 성과가 뚜렷하게 갈리며 IPO 시장의 양극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