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는 일부 익절(수익을 보고 파는 것), 테슬라는 저가 매수.’

세계적 큰손이자, 한국 투자자 중 미국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민연금의 최신 미국 주식 투자 내역이 공개됐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13F 보고서(13F Filing)’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총 1160억달러(약 161조원)어치 미국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월 말(1040억달러) 대비 3개월 사이 11.5% 증가한 것이다. 신규 투자금이 늘어난 것과 주가가 올라 평가 금액이 불어난 것이 합쳐진 규모다.

그래픽=김성규

◇엔비디아·MS 일부 팔고

13F 보고서란 1억 달러 이상 미국 주식을 굴리는 기관 투자자가 매 분기가 끝나고 45일 이내에 SEC에 공시하는 보유 주식 포트폴리오를 말한다. 이 보고서 내용을 보면 세계적 큰손들이 어떤 종목의 비율을 늘렸고 줄였는지, 또 어떤 종목을 최초로 담기 시작했는지 또 팔아치웠는지 등을 알 수 있다. 해당 투자자의 투자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셈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가장 많이 판 종목은 보유 규모 1위인 엔비디아였다. 기존에 총 4767만여 주를 갖고 있다가 11만주가량 팔아치웠다. 그래도 전체 포트폴리오 내 비율은 4.97%에서 6.35%로 높아졌다. 주가가 오른 덕분이다.

13F 보고서를 분석하는 투자 정보 사이트 웨일위즈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11년 전인 2014년 3분기 엔비디아에 처음 투자를 시작해 평균 매수 단가가 29달러대로 추정된다. 6월 말 주당 가격이 158달러였던 만큼 연금은 상당한 이익을 보고 팔았을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 주가는 현재 182달러 선까지 올랐다.

보유 상위 종목 중에선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브로드컴 등 기술주들도 일부 팔아치웠다. 모두 매수 가격을 바탕으로 추정컨대 적어도 2~3배는 남겼을 것으로 분석된다.

◇넷플릭스·테슬라는 더 샀다

반면 보유 상위 종목 중 애플과 아마존은 더 사들여 비율을 확대했다. 구글과 테슬라도 더 사들였다. 많은 서학 개미가 테슬라에 물려 있지만, 국민연금의 테슬라 평단가는 135달러 수준으로 현재 주가(340달러대) 대비 상당한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의 갈등이 격화되며 주가가 220달러까지 떨어졌을 때 국민연금은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포트폴리오에서 비율이 가장 많이 확대된 종목은 넷플릭스. 2분기에 ‘오징어 게임 3’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K콘텐츠의 활약에 힘입어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실제 지난달 발표된 넷플릭스 2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이 지난해보다 15.9% 늘어나고 주당순이익(EPS)도 월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호실적 덕분에 2분기 중 주가도 40% 넘게 급등했다. 베팅이 적중했다.

◇새로 담은 주식도 ‘눈길’

운용 종목 총 542개 중 새로 편입한 두 종목도 눈길을 끈다. 종목 코드 ‘RAL’을 쓰는 랠리언트 코퍼레이션과 ‘AMTM’의 아멘텀 홀딩스가 그것이다. 랠리언트는 노스캐롤라이나에 본사를 둔 정밀 계측 및 센서 시스템 전문 회사로, 6월 말 시장에 새로 입성했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에서 “AI(인공지능)와 양자 컴퓨팅 시스템이 사용하는 통신 규격과 프로토콜을 테스트 및 검증하는 장비를 공급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연금이 여기에 투자한 규모는 약 843만달러로, 연금 전체 포트폴리오의 0.01%, 전체 보유 종목 중 426위에 불과하지만, 올해 미국 시장 주도 테마인 AI와 양자 컴퓨팅 모두에 관련 있는 회사여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고 ‘정찰대’를 보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아멘텀 홀딩스는 미사일 방어 체계에 대한 테스트, 훈련, 작전 지원 서비스 등을 하는 방산 업체다. 평단 20달러에 사서 23달러가 돼 초기 수익률은 좋은 편이나, 보유액은 극히 적은 2만3492달러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달 운용 계획을 통해 “5월 말 기준 전체 운용 자산 중 35.1%를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데 연말에는 이 비율을 35.9%로, 내년에는 38.9%로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