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올해 시행 예정이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가 내년 이후로 미뤄지면서 정부의 로드맵 발표도 늦어지고 있다. 공시 의무화 시점이 미뤄졌다지만 어쨌든 과제를 받은 기업 입장에선 로드맵 발표가 너무 늦어지고 있어 글로벌 규제 대응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ESG 공시 의무화와 관련해 공시 기준을 조속하게 마련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당국이 하루빨리 공시 항목과 추진 일정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ESG 공시는 기업의 탄소 배출량, 사회 기여 등 지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에 점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환경에서 기업이 직접 관련 정보를 투자자에게 제공하라는 취지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도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에 앞서 기준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2023년 당시 올해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기업의 경영 부담을 이유로 의무화 시점을 2026년 이후로 미뤘다. 이에 따라 2023년 하반기 발표 예정이었던 공시 의무화 로드맵 발표도 올해 상반기로 미뤄졌다. 하지만 7월 말에 접어든 지금까지 금융당국의 ESG 관련 발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기업은 ESG 공시가 부담되겠지만, 해외 사업을 하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해당 국가의 기준에 맞춰 공시를 준비할 수밖에 없다”며 “어차피 도입할 ESG 공시 의무화라면 공시 항목과 추진 일정 등을 확정해야 해외 공시에 대한 대비도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SG 공시가 경영 활동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속도 조절을 요구하던 재계도 최근에는 규제 완화와 동시에 정부의 발 빠른 로드맵 마련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23일 ‘탄소중립·지속가능성 정책 수립을 위한 경제계 건의’를 국회, 국정기획위원회 등에 전달했다. 글로벌 기준이 속속 마련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에 적용될 로드맵도 빠르게 확정해 국내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다.

한경협은 “글로벌 ESG 공시 기조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공시 의무화 로드맵, 세부 기준 확정이 지연되고 있다”며 “공시 항목, 적용 범위, 일정 등 세부 사항이 발표되지 않아 기업의 중장기 투자, 시스템 구축, 인력 배치 등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개별 기업은 자구책으로 자체적인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발표에 나서고 있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공시와 달리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기업이 자발적으로 ESG 활동을 알리는 문서다. 지난해에는 상장사 200여곳이 지속경영가능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올해도 유한양행, 동아ST, 파마리서치, 삼성E&A,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수십 곳이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ESG 공시 항목이 정해지면 의무 공시 시행 이전에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반영해 관련 데이터 수집과 필요한 인프라 확충 등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ESG 공시 로드맵 마련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ESG 공시를 신속 추진하겠다고 했고, 국회에서도 지난 6월 ESG 공시 의무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권환경실사법’이 발의되면서 논의가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해외 규제 상황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동향을 살펴 가면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부담은 경감하면서도 투자에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담을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