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된 A사는 금융 당국에 부정 회계가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금융위원회 조사 결과, A사는 깡통 자회사를 세워 자금을 조달했고,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없는 채권 가치를 뻥튀기해 재무제표에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부정 회계가 가능했던 건 자산을 평가한 외부 회계법인의 조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의심됐다. 외부 평가기관의 잘못된 자산 평가가 결국 부정 회계로 이어진 셈이지만, 현행 법으로는 외부 평가기관을 제재할 수단은 없다.

기업 회계 투명성이 강조되면서 회계법인 등 외부 평가기관의 역할이 늘고 있지만, 이들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담보할 수 있는 규제 방안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금융 당국은 회계법인 등 외부 평가를 수행하는 기관을 규제하는 방안 마련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원회 전경

24일 금융 당국 관계자는 “회계 처리 과정에서 이뤄지는 외부 평가가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규율 체계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자본시장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외부 평가기관의 역할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기업의 투명한 회계가 강조되면서 이들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회사가 재무제표를 작성하려면 비상장사를 포함한 보유 지분 가치와 자산 회수 가능성 등을 정확하게 평가해 공정 가치를 반영해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 전문 평가기관이 담당한다.

지난해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된 것 역시 외부 평가기관의 몸값을 대폭 높인 대표적인 장면이다. 개정 시행령에 따르면 상장사가 비계열사 간 합병을 추진할 땐 반드시 외부평가를 받고 이를 공시하도록 했다. 합병과 관련된 특수관계에 있지 않은 회계법인이나 신용평가사, 금융투자업자를 선정해 합병가액의 적정성에 대해 독립적인 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문제는 관련 규제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외부 평가기관이 고의로든 과실로든 부실한 평가를 내놓았을 때 이에 따라 발생한 피해를 구제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외부 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기업 간 합병 과정에서는 자본시장법상 외부 평가기관에 대한 업무 가이드라인과 품질관리규정이 있다. 하지만 합병에 해당하지 않는 회계 과정의 외부 평가는 관련 규제가 없다.

대형 회계법인의 경우 국제적인 수준의 평가 매뉴얼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한국공인회계사회 역시 자율 규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자율 규제다. 게다가 공인회계사법이나 외부감사법이 규제하지 않는 신용평가사나 증권사 같은 외부 평가기관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

금융 당국은 외부 평가기관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외부 평가기관의 부실평가에 대한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당국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제도화해야 하는지 연구하는 단계”라며 “여러 방안과 해외 사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 관계자는 “모든 방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브레인스토밍하는 단계로,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규제 강화에 대해 관련사들이 부담을 호소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가치 평가를 회계감사 수준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면 외부 평가사가 지나치게 큰 부담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